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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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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
2017
Publisher:
창비
Language:
korean
Pages:
263
ISBN 10:
8936434268
ISBN 13:
9788936434267
File:
EPUB, 9.02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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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Fo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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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Vadbiológia

년:
2007
언어:
hungarian
파일:
PDF, 3.44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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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초판 1쇄 발행 • 2017년 3월 31일

초판 25쇄 발행 • 2018년 4월 17일

전자책 발행 • 2017년 3월 31일

전자책 수정 발행 • 2018년 4월 17일



지은이 • 손원평

펴낸이 • 강일우

책임편집 • 정소영 김영선

펴낸곳 • (주)창비



주소 • 10881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84

홈페이지 • www.changbi.com

전자우편 • ya@changbi.com



ⓒ 손원평 2017

종이책 ISBN 978-89-364-3426-7 03810

전자책 ISBN 978-89-364-3426-7 03810

전자책 제작/(주)미디어창비 ebook@changbi.com



*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하면 민ㆍ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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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창비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손원평 孫元平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2001년 제6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고, 2006년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너의 의미」 등 다수의 단편영화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아몬드』는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며,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러두기

•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은 1970년대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애이다. 아동기에 정서 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는 감정 중에서도 특히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 다만 공포, 불안감 등과 관련된 편도체의 일부는 후천적인 훈련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 소설은 사실에 근거하되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알렉시티미아를 묘사하였다.

• P. J. 놀란은 가상의 인물이다.

• 200~201쪽에 언급된 공룡 관련 동화책은 버나드 모스트의 『꼬마 공룡 모여라』(비룡소 2003)이다. 이 책의 본문에 의거해 공룡을 묘사했으나 공룡의 실제 크기는 연구 결과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되고 있다.





Dan에게





프롤로그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끝이 비극일지 희극일지를 여기서 말할 생각은 없다. 첫째, 결론을 말하는 순간 모든 이야기는 시시해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둘째, 그렇게 해야 당신을 이 이야기에 동행시킬 가능성이 조금은 커지기 때문이다. 셋째,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변명을 하자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1.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먼저 엄마와 할멈. 다음으로는 남자를 말리러 온 대학생. 그 후에는 구세군 행진의 선두에 섰던 50대 아저씨 둘과 경찰 한 명이었다. 그리고 끝으로는, 그 남자 자신이었다. 그는 정신없는 칼부림의 마지막 대상으로 스스로를 선택했다. 자신의 가슴 깊이 칼을 찔러 넣은 남자는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구급차가 도착; 하기 전 숨이 끊어졌다. 나는 그 모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2.

첫 번째 사건은 여섯 살 때 일어났다. 징후를 보인 건 훨씬 전부터였고 여섯 살이 되어서야 그것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엄마의 예상보단 꽤 늦은 나이였다. 방심한 탓이었을까. 그날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그날 오랜만에, 실로 몇 년 만에 아빠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제는 당신을 잊겠노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잊겠노라고, 납골당의 빛바랜 벽을 닦으며 그렇게 얘기했단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이 완전히 끝맺어지는 그 순간에, 철없는 사랑이 가져다준 불청객인 나는, 철저히 잊히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진 후, 나는 유유히 유치원 건물을 빠져나왔다. 여섯 살짜리 남자애가 집의 위치에 대해 아는 거라곤 육교 너머 어딘가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육교 위로 올라 난간 아래로 고개를 떨궜다. 아래로 차들이 미끄러지듯 씽씽 달리고 있었다. 문득 어디선가 본 게 떠올라 입 안에 침을 잔뜩 끌어모았다. 아래로 지나가는 차에 침을 맞히는 거다. 하지만 내 침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공기 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걸 지켜보며 몇 차례 계속하고 있자니 몸이 붕 뜬 것처럼 어질어질했다.

—뭐하니! 더럽게.

고개를 드니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줌마는 제 갈 길을 가는 차들처럼 그 말만 남긴 채 미끄러지듯 나를 지나쳤고 나는 다시 홀로 남았다. 육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나는 방향을 알지 못했다. 어차피 계단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똑같이 회색빛으로 차가웠다. 비둘기 몇 마리가 푸드덕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새들이 향하는 방향을 쫓아가기로 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린 뒤였다. 그즈음 유치원에서 배우던 노래는 「앞으로」였다. 그 노랫말처럼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나아가면 언젠간 집에 도착하겠지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고집스럽게 짧고 투박한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큰길은 골목으로 이어졌고 골목 양옆으로는 낡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너져 가는 시멘트 벽 여기저기에 알 수 없는 붉은색 숫자며 ‘공가’라는 글자 따위가 적힌 게 보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아, 하고 작게 소리쳤다. 아,였나, 어,였나. 아아아,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작고 짤막한 외침이었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점점 소리가 가까워졌고 그 외침은 으,가 되었다가 이이이,가 되기도 했다. 모퉁이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나는 지체 없이 모퉁이를 돌았다.

한 아이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작은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 위로 검은 그림자가 정신없이 드리워졌다 거둬졌다 하길 반복했다. 아이는 맞고 있었다. 짧은 외침은 그 아이가 내는 게 아니라, 그 애를 둘러싼 그림자들에게서 기합처럼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그들은 아이에게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었다. 나중에서야 그들이 고작 중학생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 내 눈에 비친 그림자들은 다 큰 어른처럼 길고 거대했다.

아이는 이미 맞은 지가 너무 오래된 듯 저항을 하지도,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그저 헝겊 인형처럼 이쪽저쪽으로 내팽개쳐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마무리 동작처럼 아이의 옆구리를 내리찍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사라졌다. 빨간 물감을 뒤집어쓴 것처럼 아이의 온몸이 피로 물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열한 살이나 열두 살, 그러니까 내 나이의 두 배쯤. 그런데도 형이라는 생각은 안 들고 아이인 것만 같았다. 아이의 가슴이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짧고 얕은 숨으로 빠르게 달싹거렸다. 꽤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모퉁이를 다시 돌아 나왔다. 여전히 인적은 없었고 회백색 벽 위의 붉은 글씨들만이 눈을 어지럽혔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작은 구멍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텔레비전에선 「가족오락관」이 나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보며 낄낄대느라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귀마개를 한 출연자들이 앞사람의 입모양만 보고 단어를 알아맞히는 게임이었다. 전달해야 할 단어는 ‘전전긍긍’이었다. 그 단어가 왜 기억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때 전전긍긍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니까. 어쨌든 젊은 여자 출연자가 자꾸만 엉뚱한 단어를 얘기해서 방청객과 가게 아저씨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결국 주어진 시간이 종료됐고 여자 팀은 그 문제를 놓쳤다. 아저씨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다시,

—아저씨.

하고 불렀다.

—응?

아저씨가 고개를 돌렸고 나는,

—골목에 누가 쓰러져 있어요.

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그러니?

라고 대수롭잖게 대꾸하곤 자세를 추슬렀다. 텔레비전에선 역전이 가능한 점수 높은 문제를 걸고 양 팀이 대결하려는 참이었다.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요.

나는 매대에 가지런히 진열된 캐러멜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네, 그래요.

그제야 아저씨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무서운 얘기를 참 태연히도 하는구나. 거짓말하면 못쓰는 거야.

나는 한동안 아저씨를 설득할 말을 찾느라 침묵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아는 단어도 별로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했던 말보다 더 진짜 같은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죽을지도 몰라요.

했던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3.

아저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캐러멜을 꼼지락대며 만지작거리는 나를 보다 못한 아저씨가 아무것도 사지 않을 거면 그만 나가라고 하는 동안, 그러고도 한참을 꾸물거린 경찰이 현장까지 가는 동안, 나는 줄곧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을 아이를 생각했다. 그 애는 진작에 숨이 끊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 애가 바로 그 아저씨의 아들이었다는 거다.



나는 경찰서 안 벤치에 앉아 아직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앞뒤로 휘저었다. 교차로 움직이는 발의 움직임이 차가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미 깜깜한 밤이었고 졸음이 밀려왔다. 까무룩 잠이 들려는 순간, 엄마가 경찰서 문을 밀고 들어섰다. 나를 본 엄마는 통곡하며 내 머리통을 아프도록 쓰다듬었다. 상봉의 기쁨이 채 식기도 전, 다시 경찰서 문이 벌컥 열렸다. 온 얼굴이 눈물로 덮인 아저씨가 경찰들에게 몸을 맡긴 채 울부짖으며 들어왔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아저씨는 쓰러지듯 꿇어앉더니 몸을 떨며 주먹으로 바닥을 때렸다. 그러더니 별안간 몸을 일으켜 내게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했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전달받은 의미는 이런 거였다.

‘네가 조금만 진지하게 말했더라면 늦지 않았을 거다.’

옆에서 경찰이 유치원생이 뭘 알겠느냐며 고꾸라지려는 아저씨를 간신히 받아 세웠다. 나는 아저씨의 말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는 줄곧 진지했다. 단 한 번을 웃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질책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섯 살의 짧은 어휘로는 그런 의문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잠자코 있었다. 나를 대신해 엄마가 목청을 높였다. 경찰서 안은 삽시간에 아이를 잃은 자와 아이를 찾은 자의 소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날 밤 나는 여느 때처럼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기린 모양의 블록이었는데 기다란 목을 아래로 꺾으면 코끼리가 됐다. 엄마의 시선이 내 몸 구석구석에 닿는 게 느껴졌다.

—무섭지 않았어?

엄마가 물었고

—아니.

내가 대답했다.



어쩐 일인지 그 사건, 그러니까 내가 사람이 맞아 죽는 걸 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더라, 하는 얘기는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때부터 엄마가 걱정하던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문제는 심각해졌다. 어느 날 하굣길에 내 앞을 걷던 여자애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걔가 엎어진 채로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애가 일어나길 기다리며 여자애의 뒤통수에 매달린 미키마우스 머리 끈만 바라봤다. 하지만 넘어진 애는 자리에서 울기만 했다. 갑자기 그 애의 엄마가 나타나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나를 흘기며 혀를 찼다.

—친구가 다쳤는데 괜찮냐고 물어볼 줄도 모르니? 소문은 들었지만 애가 정말 보통이 아니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감지한 아이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소곤대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모르긴 해도 아줌마가 한 말의 메아리 같은 말들이었을 거다. 그때 날 구한 건 할멈이었다. 할멈은 어디선가 원더우먼처럼 등장해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제 복이 없어서 넘어진 거지, 어디서 남 탓이야?

걸걸하게 일갈한 할멈은 아이들에게도 한소리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뭐가 재밌다고 보고들 있어? 못난 것들.

무리에서 꽤 멀어졌을 때쯤 할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꾹 다문 입이 앞으로 쭉 내밀어져 있었다.

—할멈, 사람들이 왜 나보고 이상하대?

할멈은 내민 입을 집어넣었다.

—네가 특별해서 그러나 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 걸 배기질 못하거든. 에이그, 우리 예쁜 괴물.

할멈이 나를 으스러져라 안는 통에 갈비뼈가 아렸다. 전부터 할멈은 나를 종종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 단어는 적어도 할멈에게만은 나쁜 뜻이 아니었다.





4.

솔직히 할멈이 붙여 준 애정 어린 별명을 이해하는 데엔 시간이 좀 걸렸다. 책에서 본 괴물들은 예쁘지 않았다. 아니, 예쁠 수 없는 게 괴물이었다. 그런데 할멈은 왜 날 예쁜 괴물이라고 부르는 걸까. 모순된 개념을 연달아 붙여서 의미를 낳는 ‘역설’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에도 할멈의 방점이 ‘예쁜’에 찍혀 있는지 ‘괴물’에 찍혀 있는지 잘 몰라 헷갈리곤 했다. 어쨌든 할멈은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으니 나는 할멈을 믿기로 했다.

엄마는 할멈에게 미키마우스 여자아이 사건을 전해 듣자 눈물부터 짜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래도 이렇게 빨리 드러날 줄은 몰랐는데…….

—듣기 싫다! 징징거릴 거면 네 방에 들어가서 문 꽉 잠그고 징징대.

별안간의 호통에 잠깐 눈물을 멈춘 엄마는 할멈을 한번 노려보더니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할멈은 쯔쯔쯔 혀를 차곤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휴우, 한숨을 쉬곤 천장 구석을 무심히 올려다봤다. 할멈과 엄마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풍경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말마따나, 나에 대한 엄마의 걱정은 세월이 깊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으니까. 어떻게 달랐느냐 하면,



나는 웃지를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발달이 조금 느린 거려니 했다. 하지만 육아책에는 아기들이 생후 삼 일이면 웃기 시작한다고 쓰여 있었다. 엄마는 손을 꼽아 날짜를 세어 보았다. 백 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웃지 않는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나는 꿈쩍도 안 했다. 엄마는 공주의 마음을 사려는 이국의 왕자처럼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손뼉도 치고 딸랑이도 색깔별로 사서 흔들어 대고 동요에 맞춰 코믹 댄스도 춰 봤다. 그러다 지치면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한 대씩 피웠다. 나를 가졌다는 걸 안 뒤 간신히 끊었던 담배였다. 그 무렵 엄마가 찍어 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엄마 앞에서 어린 나는 엄마를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아기의 눈빛이라기엔 너무나 깊고 잔잔하다.

어쨌든 엄마는 나를 웃게 하는 데 실패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웃지 않을 뿐 영유아 검진 결과 내 키나 체중, 행동 발달은 또래의 평균에 속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동네 소아과 의사는 아기는 건강히 무럭무럭 크고 있으니 걱정 말라며 엄마를 돌려보냈다. 엄마도 단지 내가 다른 아기들보다 조금 무뚝뚝한 것뿐이라고 애써 위안하려 했다. 하지만 돌이 지날 무렵 진짜 걱정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엄마는 뜨거운 물이 든 빨간 주전자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분유를 타느라 엄마가 뒤돌아서 있던 사이 나는 주전자에 손을 뻗었고, 다음 순간 주전자가 탁자 아래로 떨어졌다. 주전자가 나동그라지며 마루에 물이 퍼졌다. 아직까지도 희미하게 남은 화상 자국이 그때의 훈장이다. 나는 자지러지게 울어 댔고, 엄마는 내가 앞으로 뜨거운 물이나 빨간 주전자를 무서워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기들은 보통 그랬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물도 주전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안에 든 물이 차갑든 뜨겁든 여전히 빨간 주전자를 보면 손을 뻗었다.

그뿐이 아니다. 아랫집의 애꾸눈 영감도, 영감이 빌라 화단에 매어 놓은 커다란 검둥개도 내겐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백태가 껴 허연 영감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고 엄마가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짖어 대는 개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 개가 옆집 아이를 물어 피가 나게 하는 걸 본 뒤에도 그랬다. 엄마가 부리나케 달려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몇몇 일들을 겪으며 엄마는 때때로 내 지능이 낮은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내 외모나 행동에서 딱히 지능이 낮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나라는 아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헷갈린 엄마는, 엄마답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또래에 비해 겁이 없고 침착한 아이.’

엄마의 일기장 속에는 내가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 네 살이 지나도록 좀처럼 웃지 않는다면 불안이 극에 달할 법도 하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더 큰 병원을 찾았다. 바로 그날이 내 기억에 최초로 각인된 날이다. 물속에서 본 것처럼 아른아른하다가 때때로 선명해지는 장면.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내 앞에 앉아 있다.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여러 가지 장난감을 차례로 보여 준다. 그중 몇 개는 직접 흔들어 보이기도 한다. 이번엔 내 무릎을 작은 망치로 톡톡 두들긴다. 생각지도 않게 종아리가 그네 뛰듯 하늘로 박차고 올라간다. 남자는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가락을 넣는다. 나는 간지러워서 조금 웃는다. 이번에는 그가 사진을 보여 주며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중 한 가지 사진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사진 속의 아이는 울고 있어. 엄마가 없어졌기 때문이야. 이 아이의 기분은 어떨까?

나는 답을 몰라 옆에 앉은 엄마를 올려다본다. 엄마는 미소를 짓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러다 문득 아랫입술을 지그시 문다.



얼마 후 엄마는 우주여행을 간다며 나를 어디로 데려갔다. 그런데 도착한 장소는 병원이었다. 아픈 데도 없는데 왜 여기 왔느냐고 물어보지만 엄마는 답해 주지 않는다. 나는 차가운 어딘가에 눕는다. 허연 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띠띠띠. 이상한 소리가 난다. 우주여행은 시시하게 끝났다.

또다시 장면이 바뀌면, 갑자기 가운 입은 남자들의 수가 늘어 있다. 그중 가장 나이 든 남자가 흐릿한 흑백 사진을 보여 주며 내 머릿속을 찍은 거라고 한다. 거짓말. 딱 봐도 저건 내 머리가 아니다. 근데 엄마는 그 뻔한 거짓말을 믿기라도 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가 입을 열 때마다 옆에서 젊은 남자들이 뭔가를 받아 적는다. 조금 지루해져서 나는 발을 건들거린다. 그러다 의사의 책상을 몇 차례 친다. 엄마가 하지 말라며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올려다본 엄마의 뺨 위로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 뒤로 남아 있는 그날의 기억은 엄마가 온통 우는 모습뿐이다. 엄마는 울고, 울고, 또 운다. 대기실로 나온 뒤에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에 만화가 나오는데 엄마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 우주 전사가 악당을 물리치는데도 엄마는 울고만 있다. 결국 대기실 옆자리에서 졸고 있던 할아버지가 호통을 친다. 청승 좀 그만 떨어, 아까부터 시끄러워 죽갔네! 그제야 엄마는 야단맞은 여중생처럼 입술을 꽉 오므린 채 몸만 들썩들썩한다.





5.

엄마는 내게 아몬드를 많이 먹였다. 나는 아몬드라면 미국산부터 시작해서 호주산, 중국산, 러시아산까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종류는 다 먹어 봤다. 중국산에선 기분 나쁜 쓴맛이 나고 호주산은 뭔가 모르게 시큼털털한 흙냄새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도 있지만 내 입엔 역시 미국산, 그중에서도 캘리포니아산이 최고다. 이제 태양 빛을 잔뜩 머금어 은은한 갈색빛이 도는 캘리포니아산 아몬드를 먹는 나만의 방법을 알려 주겠다.

먼저 아몬드 봉지를 집어 들고 그 안에 든 아몬드의 촉감을 느껴 본다. 포장지 아래로 만져지는 단단한 알맹이들이 고집스럽다. 봉지 윗부분을 가만히 뜯고 이중 처리된 지퍼를 연다. 눈은 감은 상태여야 한다. 그런 다음,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봉투 안으로 코를 들이민다. 얕게, 숨을 끊어서 들이쉰다. 향이 몸속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아몬드 향이 깊이 들어찼을 때 반 줌 정도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혀로 아몬드의 결을 느끼며 한동안 입 안에서 굴린다. 뾰족한 곳을 찔러도 보고 아몬드 표면의 홈을 혀로 훑어도 본다. 너무 오래 해서는 안 된다. 아몬드가 침에 불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클라이맥스를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다. 짧으면 시시하고, 길면 임팩트가 사라진다. 적당한 타이밍은 당신이 직접 찾아야 한다. 클라이맥스로 향해 갈 때는 아몬드가 점차 커지는 상상을 한다. 손톱만 한 아몬드가 포도알만큼, 키위만큼, 오렌지만큼, 수박만큼 점점 커진다. 이제 아몬드가 럭비공만큼 부풀었다. 바로 이때다. 와드득, 깨문다. 그러면 아그작 소리와 함께 멀고 먼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날아든 햇빛이 입 안으로 퍼져 나간다.

굳이 이런 의식을 치르는 이유는 내가 아몬드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식탁 위엔 삼시 세끼 아몬드가 올랐다. 피할 길은 없었다. 그러므로 먹는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 엄마는 아몬드를 많이 먹으면 내 머릿속의 아몬드도 커질 거라 생각했다. 그게 엄마가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였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6.

의사들이 내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티미아였다. 증상이 너무 깊은 데다 나이가 너무 어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볼 수 없었고, 다른 발달 사항들에 문제가 없어 자폐 소견도 없었다. 표현 불능이라고 하지만 표현을 못한다기보단, 잘 느끼질 못한다. 언어 중추인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을 다친 사람들처럼 말을 만들어 내거나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의 이름들을 헷갈린다. 의사들은 선천적으로 내 머릿속의 아몬드, 그러니까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데다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입을 모았다.

편도체가 작으면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가 공포심을 잘 모르는 거다. 용감해서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모르는 소리다. 두려움이란 생명 유지의 본능적인 방어 기제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건 용감한 게 아니라 차가 돌진해도 그대로 서 있는 멍청이라는 뜻이다. 나는 운이 더 나빴다. 공포심 둔화 외에 나처럼 전반적인 감정 불능까지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불행 중 다행은 이 정도로 작은 편도체를 가지고도 딱히 지능 저하의 소견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의사들은 사람마다 뇌가 다르니 내 경우는 더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중 몇은 꽤 솔깃한 제안을 했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뇌의 신비를 벗겨 내는 데 내가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대학 병원 연구진들은 내가 자라날 때까지 여러 임상 실험을 하고, 학회에 보고를 하는 등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의뢰를 해 왔다. 임상 참가비 제공은 물론이고, 연구 결과에 따라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처럼 내 이름도 뇌의 한 부분에 붙여질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선윤재 영역’. 하지만 이미 의사들에게 넌덜머리가 난 엄마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일단 브로카와 베르니케가 실험 대상자가 아니라 과학자 이름이었단 걸 엄마가 알고 있었던 게 문제다. 엄마는 집 근처 구립 도서관을 꾸준히 다니며 뇌에 관한 여러 책을 섭렵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 흥미로운 고깃덩이로 바라보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는 의사들이 나를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접었다. 고작해야 이상한 실험을 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인 뒤 내 반응을 관찰해서 학회에 가서 뽐내는 게 다겠지. 이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많은 엄마들이 흥분할 때면 던지곤 하는 흔해 빠진 데다 설득력 없는 말을 내뱉었다.

—내 애는 내가 가장 잘 알아요.

병원에 발길을 끊던 날 엄마는 병원 건물 앞 화단에 침을 뱉은 뒤 이렇게 말했다.

—지들 대가리 속도 모르는 것들이.

엄마는 가끔 그렇게 난데없는 호기를 부릴 때가 있었다.





7.

엄마는 임신 중에 겪은 스트레스나 몰래 피웠던 한두 개비의 담배, 막달에 못 참고 몇 모금쯤 홀짝인 맥주 따위를 후회했지만, 사실 내 머리통이 왜 그 모양인지는 너무 뻔하다. 그저 운이 없었던 거다. 생각보다 운이라는 놈이 세상에 일으키는 무지막지한 조화들이 많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면 엄마는 이런 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 남들처럼 유연하지 않은 대신, 영화에서처럼 기억력이 컴퓨터 수준이라든가 미적 감각이 탁월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인 그림을 그려 낸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랬더라면 쇼 프로에 나갈 수도 있었을 거고 아무렇게나 페인트를 뿌려 댄 그림도 수천만 원에 팔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천재적인 능력은 없었다.

어쨌거나 미키마우스 머리 끈을 맨 여자아이 사건이 벌어진 후 엄마는 내게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했다. 내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건 그저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임을 넘어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무서운 표정으로 훈계를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예컨대 소리친다, 고함을 지른다, 눈썹이 위로 솟는다…… 이런 게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내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현상에 그 이면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였다.

엄마는 색종이에 여러 개의 문장을 쓴 다음 커다란 전지에 그것들을 일일이 붙였다. 벽을 장식한 전지 위엔 이런 말들이 쓰여 있었다.



차가 가까이 온다 → 몸을 피하거나, 가까워지면 뛴다

사람이 다가온다 → 부딪히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켜선다

상대방이 웃는다 → 똑같이 미소를 짓는다



맨 밑에는



* 참고 사항: 표정의 경우, 무조건 상대와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편함



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내가 이해하기엔 다소 긴 문장이었다.



전지에 적힌 예들은 무궁무진했다. 또래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우는 동안 나는 왕조의 연표를 외듯 그것들을 외워서 알맞은 항목끼리 짝을 지었다. 엄마는 정기적으로 나에게 시험을 치르게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습득할 ‘본능적인’ 규범들을 나는 그렇게 하나하나 암기했다. 할멈은 주입식 교육이 과연 소용이 있겠느냐고 혀를 차면서도 전지에 붙일 화살표를 오렸다. 화살표가 할멈의 담당이었다.





8.

몇 해가 지나고 내 머리통은 굵어져 갔지만 머리 안에 든 아몬드의 크기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사람 관계가 복잡해지고 엄마가 알려 준 공식만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더 요주의 인물이 되어 갔다. 학년이 바뀐 지 하루 만에 이상한 아이로 찍히거나 운동장 뒤로 불려 나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늘 이상한 질문을 던졌고 그러면 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몰라 곧이곧대로 답하곤 했다. 그 아이들이 왜 그렇게 배를 잡고 웃는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매일같이 엄마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튀지 말아야 돼. 그것만 해도 본전이야.

그 말은 들키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그걸 들키면 튀는 거고 튀는 순간 표적이 된다. 단순히 차가 다가오면 몸을 피하라는 수준의 지침으로는 부족했다. 스스로를 감추려면 고도의 연기가 필요한 타이밍이 온 거다.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상상력을 발휘해 극작가 수준으로 대화 내용을 덧붙여 갔다. 이제는 상대가 던지는 말 속에 담긴 ‘참 의미’와, 내가 하는 말에 담겨야 할 ‘바람직한 의도’까지도 함께 짝지어 외워야 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 새로운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보여 주며 설명할 때 그 애들이 진짜로 하고 있는 건 설명이 아니라 ‘자랑’이라고 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럴 때 모범 답안은

—좋겠다.

였고, 그게 뜻하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생겼다거나 잘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물론 ‘긍정적’에 해당하는 게 무엇인지도 따로 외워야 했지만)

—고마워.

혹은

—이 정도 가지고 뭘.

이 맞는 대답이었다.

엄마는, ‘고마워.’는 상식 수준의 답이고 ‘이 정도 가지고 뭘.’은 약간의 여유를 부리는 태도로 내가 더 멋진 아이로 보일 수 있는 답변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언제나 제일 간단한 답을 선택했다.





9.

엄마는 자타가 공인하는 악필이었기 때문에 나를 위해 인터넷에서 희, 노, 애, 락, 애, 오, 욕이라는 한자를 찾아 A4 한 장에 한 글자씩 커다랗게 인쇄했다. 쯔쯔. 그 꼴을 본 할멈이 혀를 찼다. 할멈은 모든 일엔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법이라며 엄마를 타박했다. 그러곤 한자에 관한 한 까막눈이었음에도, 그림 그리듯 그 글자들을 커다랗게 따라 그렸다. 엄마는 할멈에게서 건네받은 글자들을 가훈처럼 혹은 부적처럼 집 안 곳곳에 붙였다.

신발을 신을 때면 신발장 위에서 喜(희)가 내게 미소 지었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愛(애)를 보아야 했다. 잠들기 전에는 침대맡에서 樂(락)이 나를 굽어보았다. 장소와는 무관하게 붙여 놓은 것들이었지만, 엄마의 미신에 따라 나쁜 것들, 그러니까 분노, 슬픔, 미워함 따위에 해당하는 글자들은 화장실 안에 한꺼번에 붙여 두었다. 시간이 가면서 화장실의 습기로 종이는 우글쭈글해지고 글자들은 희미해졌다. 할멈은 정기적으로 그 글자들을 다시 써서 붙였다. 그래서인지 종국에는 할멈이 그 한자들을 외워서 멋들어진 글씨체로 쓸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는 ‘희로애락애오욕 게임’까지 만들었다. 엄마가 상황을 제시하면 내가 감정을 맞혀야 한다.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준다면 느껴야 할 감정은? 정답은 기쁨과 감사.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했을 때 느껴야 할 것은? 정답은 분노. 이런 식이었다.

한번은 내가, 누군가 맛없는 음식을 주었을 때는 무엇을 느껴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엄마가 대답을 내놓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한참 고민한 끝에 엄마는 일차적으로는 음식이 맛이 없기 때문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음식 맛이 형편없다며 식당 흉을 보는 것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맛이 없는 음식일지라도 기뻐하거나 감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할멈은 그저 감사하며 먹으라고 엄마에게 핀잔을 주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내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자, 엄마가 내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하거나 우물쭈물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결국 엄마는 더 이상의 질문을 일축하듯, ‘희로애락애오욕’의 기본 개념이라도 잘 암기하라고 했다.

—복잡한 것까진 몰라도 기본은 꼭 알아야 해. 그렇게만 해도 조금 메말랐다는 소릴 들을지언정 정상 범주에 속할 거야.

사실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내가 미세한 단어의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따위는 내게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10.

엄마의 끈질긴 노력과 매일같이 행해지던 습관적이고 의무적인 훈련 덕에 나는 차츰 학교에서 별문제 없이 지내는 법을 대강 익혔다. 초등학교 4학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적당히 무리 안에 섞여 있는 것도 가능했으니, 튀지 말라는 엄마의 소망도 이루어진 셈이다. 대부분은 그저 잠자코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거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다. 침묵은 과연 금이었다. 대신 ‘고마워.’와 ‘미안해.’는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어야 했다. 그 두 가지 말은 곤란한 많은 상황들을 넘겨 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여기까진 쉬웠다. 상대방이 내게 천 원을 내면 거스름돈을 이삼백 원 내주는 것과 비슷했다.

어려운 건 내가 먼저 천 원을 내는 거였다. 그러니까, 뭔가를 원한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어떤 것을 좋다고 표현하는 일들. 그런 게 힘든 이유는, 여분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돈을 내야 하는데 나는 사고 싶은 것도 없고, 얼마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잔잔한 호수에 억지로 파도를 치게 만드는 것처럼 버거웠다.

가령 전혀 먹고 싶지 않은 초코파이를 보며 “나도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 그러면서 “나도 하나 줄래?”라며 미소를 짓는 것. 누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가거나 약속을 어겼을 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고 따져 묻는 것. 그러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흘리는 것.

그런 것들이 내겐 가장 힘든 일이었다. 기왕이면 아예 안 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사람이 너무 잔잔한 호수처럼 보여도 이상한 애로 낙인찍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 것도 ‘아주 가끔씩은’ 해야 한다고.

—인간은 교육의 산물이야. 넌 할 수 있어.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사랑이라는 건, 단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한다, 저럴 땐 저렇게 해야 한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 따위는 주지도 받지도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물론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엄마의 행동 강령 중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라는 덕목을 입이 닳도록 외운 덕이다.





11.

할멈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엄마보다는 할멈과 ‘쿵짝이 더 잘 맞는’ 편이었다. 사실 엄마와 할멈은 둘 다 자두맛 캔디를 좋아한다는 것 말고는 생김새부터 취향, 성격까지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할멈은 엄마가 어린 시절 가게에서 제일 먼저 훔친 게 자두맛 캔디라고 했다. ‘제일 먼저’라는 말을 들은 엄마가 재빨리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큰 소리로 덧붙였지만 할멈은 배시시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두 사람이 자두맛 캔디를 좋아하는 이유는 좀 유별났다. 그 사탕은 ‘단맛과 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오묘하게 반짝이는 흰 바탕에 빨간 줄이 쓰윽 그어진 자두맛 캔디. 그걸 입 안에서 굴리는 건 둘의 소중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 빨간 줄은 유독 빨리 녹아서 먹다 보면 혀를 베기 일쑤였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말이야, 짭조름한 피 맛이 단맛이랑 어우러지는 게 그럴듯하거든.

엄마가 오라메디를 찾을 동안 할멈은 사탕 봉지를 품에 안은 채 환하게 웃으며 말하곤 했다. 할멈의 얘기는 이상하게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할멈은 내 인생에 갑자기 등장한다. 삶에 지친 엄마가 마침내 할멈에게 SOS를 치기 전까지 엄마와 할멈은 칠 년 가까이 서로 연락을 끊다시피 하고 살았다. 혈육의 정마저 끊게 한 건 외간 남자, 즉 나의 아빠였다.

엄마가 아직 배 속에 있을 때 할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할멈은, 엄마가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젊음을 다 써 버렸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산 삶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딸은 특출하진 않았어도 공부를 곧잘 했고 서울에 있는 여자 대학에 진학했다. 그렇게 키운 딸이, 여대 앞에 좌판을 깔고 액세서리 장사를 하는 웬 놈팡이—이게 할멈이 아빠를 지칭하는 말이었다—한테 눈이 먼 거였다. 놈팡이는 귀한 딸에게 아마도 좌판에 널려 있던 것 중 하나였을 싸구려 반지를 끼워 주며 영원한 사랑의 서약을 했다. 할멈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허락할 수 없다고 했지만, 사랑은 누가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는 결재 서류가 아니라고 엄마는 받아쳤고 그 결과 뺨을 맞았다.

엄마는 그렇게 반대하면 임신할 거라고 오히려 할멈을 협박했다. 정확히 한 달 뒤에 협박은 현실이 되었다. 할멈은 아이를 낳겠다면 다시는 보지 말자고 최후통첩을 했고 엄마는 정말로 집을 나갔다. 그것으로 할멈과 엄마의 연은 ‘일단’ 끊겼다.

나는 아빠를 본 적이 없다. 사진으로만 몇 번 봤을 뿐이다.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술 취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아빠의 좌판을 덮쳤다. 그 자리에서 아빠는 목숨을 잃었다. 값싼 색색의 액세서리들만 남긴 채. 그러고 나니 엄마는 더더욱 할멈한테 연락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찾아 집을 나갔다가 불행을 짊어지고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칠 년이 흘렀다.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못 버틸 때까지. 엄마 혼자서는 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12.

할멈과 나는 맥도날드에서 처음 만났다. 엄마는 그날따라 평소엔 잘 사 주지 않는 버거 세트를 두 개 시켜 놓고는 자신은 손도 대지 않았다. 엄마의 시선은 출입구를 향해 있었는데, 누군가가 들어올 때마다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상반신을 곧추세웠다가 숙였다가 하길 반복했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었더니 그건 두려움과 안도감이 뒤섞일 때 나타나는 행동 중 하나라고 했다.

마침내 지쳐 버린 엄마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나갈 채비를 하던 그 순간, 출입구가 휭 열리며 바람이 훅 끼쳐 들어왔다. 고개를 들자 어깨가 떡 벌어지고 기골이 장대한 여자가 서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 위로 눌러쓴 보라색 모자엔 깃털이 꽂혀 있었다. 동화책에서 본 로빈 후드와 닮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바로, 엄마의 엄마였다.

할멈은 무척 컸다. 크다는 말밖엔 할멈을 묘사하기에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할멈은 영원히 죽지 않는 커다란 떡갈나무 같았다. 몸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림자마저도 큼직큼직했다. 특히나 손은, 힘 좋은 남자의 손처럼 두툼했다. 할멈은 내 앞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문 채 침묵했다. 엄마가 눈을 내리깔고 웅얼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고 하자 할멈이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일단 먹어라.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다 식어 버린 버거를 꾸역꾸역 입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마지막 프렌치프라이 한 조각까지 다 사라진 뒤에도 모녀 사이엔 말이 없었다. 나는 손끝에 침을 묻혀 밤색 플라스틱 쟁반 위에 흩어진 프렌치프라이 부스러기를 하나씩 집어 먹으며 다음 상황을 기다렸다. 굳게 팔짱을 낀 할멈 앞에서 엄마는 입술을 깨문 채 자신의 구두 끝만 바라보았다. 더 이상 쟁반 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드디어 엄마가 두 손으로 내 양어깨를 잡고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예요.

할멈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몸을 뒤로 기울이더니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나중에 할멈에게 물어보니 그 끄응은 ‘잘 좀 살지, 썩을 년.’이라는 뜻이었단다. 할멈은 맥도날드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쳤다.

—꼴 좋구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고 엄마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거의 벌어지지 않는 입술 사이로 지난 몇 년간 자신의 인생에 불어닥친 풍파를 털어놓았다. 내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훌쩍이는 울음에 간간이 섞인 코 푸는 소리로만 들렸지만 용케도 할멈은 엄마의 말을 모두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빗장 잠그듯 팔짱을 끼었던 팔은 어느새 풀려 무릎 위에 얹혀 있었고 얼굴에 흐르던 윤기는 말라 버렸다. 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할멈의 표정은 엄마와 비슷해 보이기까지 했다. 엄마의 얘기가 다 끝난 뒤에도 할멈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꾸었다.

—네 엄마 말이 사실이라면, 넌 괴물이다.

엄마가 입을 쩍 벌리고 할멈을 바라봤다. 할멈은 내 눈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며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고 눈꼬리는 아래로 축 처져서 입과 눈이 만날 것 같은 미소였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 그게 너로구나!

그러곤 내 머리통을 아프도록 쓰다듬었다. 그때부터 우리 셋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13.

할멈과 함께 살게 된 엄마가 고른 새로운 직업은 헌책을 파는 거였다. 물론 할멈의 도움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엄마 표현에 따르면 ‘뒤끝 작렬’인 할멈은, 틈만 나면 투덜대곤 했다.

—하나 있는 자식 공부시키자고 평생 떡을 팔아 놨더니, 지 공부는 못 하고 헌책 장사나 하고 있군. 썩을 년.

‘썩을 년’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꽤 끔찍한 표현인데도 할멈은 자나 깨나 엄마를 향해 그 소리를 퍼부어 댔다.

—엄마는 딸한테 썩을 년이 뭐야, 썩을 년이?

—내가 틀린 말 했냐?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서 썩게 돼 있다. 욕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거지.

어쨌든 할멈과의 재결합으로 그 전까지 이사를 반복하던 우리는 정착 생활을 하게 됐다. 적어도 할멈은 엄마에게 왜 더 돈 되는 일을 하지 않느냐는 타박은 하지 않았다. 할멈에게는 이른바 활자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랬기에 없는 형편에도 어린 엄마에게 책을 많이 사 주었고 엄마가 ‘글자깨나 읽는 가방끈 긴 여자’가 되길 원했던 거다. 사실 할멈은 엄마가 작가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더 나아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고독하되 멋있게 늙을 ‘여류’ 작가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건 사실 지난 세월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할멈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이었다. 엄마에게 ‘지은’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도 그래서였다.

—지은아, 지은아, 부를 때마다 멋들어진 글자를 지어낼 줄 알았는데, 똑똑해지라고 책을 많이 읽혔더니만 책에서 배운 게 겨우 무식한 남자랑 무모한 사랑에 빠지는 거였다니. 으이그…….

종종 할멈은 툴툴거렸다.



이미 인터넷 중고 거래가 성행하는 상황에서 헌책방이 잘되는 장사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끝까지 헌책방을 고집했다. 헌책방은 현실적인 엄마가 내린 가장 비현실적인 결정이었다. 그건 엄마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꿈이기도 했다. 한때는 할멈의 소망대로, 엄마에게도 작가가 꿈인 시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인생이 할퀴고 간 자국들을 엄마는 차마 글로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팔아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고, 그건 작가의 깜냥이 아닌 거라고 했다. 그 대신 엄마는 다른 사람들의 책을 팔기로 했다. 이미 시간의 냄새가 밴 책들. 때 되면 들어오는 신간들 말고, 이왕이면 엄마가 하나하나 고를 수 있는 것들로. 그게 헌책이었다.



가게가 자리 잡은 곳은 수유동 주택가 골목이었다. 아직까지 수유리로 부르는 사람이 많은 동네. 과연 여기까지 누가 헌책을 사러 올까 싶었지만 엄마는 자신만만했다. 엄마는 오래된 책들을 고르는 안목이 탁월했고 싼값에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책들을 사들이는 방법을 알았다. 집은 가게 뒤에 딸려 있었다. 방 두 개에 거실, 욕조 없는 화장실. 우리 셋이 살기에는 충분했다. 자다가도 손님이 부르면 나올 수 있었고 내키지 않으면 문을 걸어 잠그면 그만이었다. 반짝이는 유리창 위에 ‘헌책방’이라는 글자가 붙었고 ‘지은이 책방’이라는 간판도 내걸렸다. 가게를 열기 전날 밤 엄마는 손을 탁탁 털고는 씨익 미소 지었다.

—이제 더 이상 이사 안 가. 여기가 바로, 우리 집이니까.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할멈은 희한한 일이라고 자주 중얼거렸지만, 어쨌든 먹고살 만큼은 책이 팔렸다.





14.

나도 그곳이 편안했다. 다른 사람들의 언어로는 ‘좋았다’라거나 ‘맘에 든다’가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단어로는 ‘편안하다’가 최대치다. 정확히 말하자면 헌책의 냄새가 익숙하게 다가왔다. 처음 맡았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대하듯이. 틈만 나면 책을 펼쳐 들고 냄새를 맡는 나에게 할멈은 퀴퀴한 헌책 냄새는 맡아 뭐하느냐고 핀잔을 놓았다.

책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 수 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 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 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그건 텔레비전이나 영화와는 애초에 달랐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 속의 세계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더 이상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영상 속의 이야기는 오로지 찍혀 있는 대로, 그려져 있는 그대로만 존재했다. 예를 들어, ‘갈색 쿠션이 있는 육각형의 집에 노란 머리의 여자가 한쪽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책의 문장이라면 영화나 그림은 여자의 피부, 표정, 손톱 길이까지 전부 정해 놓고 있었다. 그 세계에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고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펼치면 일단 반쯤 성공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그것이 죄가 될지 독이 될지 혹은 꿀이 될지 영원히 알 수 없더라도 나는 이 항해를 멈추지 않으리.



의미는 전혀 와닿지 않지만 상관없다.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책의 향을 느끼며 한 글자 한 글자, 모양과 획을 눈으로 천천히 좇는다. 그건 내겐 아몬드를 씹는 것만큼이나 신성한 일이었다. 눈으로 충분히 글자를 더듬었다고 생각되면 이번엔 소리를 내어 읽어 본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 그것이 죄가, 될지, 독이, 될지, 혹, 은꿀이, 될지, 영원히알, 수없, 더라, 도나, 는, 이항, 해를, 멈추, 지않, 으리.

글자를 씹듯이 음미하며 목소리로 내뱉는다. 계속 계속, 외울 때까지 계속. 같은 말을 여러 번 되뇌면 말의 뜻이 흐릿해지는 때가 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글자는 글자를 넘어서고, 단어는 단어를 넘어선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외계어처럼 들린다. 그럴 때면, 내가 헤아리기 힘든 사랑이니 영원이니 하는 것들이 오히려 가까이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나는 이 재밌는 놀이를 엄마에게 소개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뭐든 여러 번 반복하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처음엔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금 더 지난 뒤엔 변하거나 퇴색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 결국 의미가 사라져 버린단다. 하얗게.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아아라아아앙. 사랑. 사랑사. 랑사. 랑사.

영원. 영원. 영원. 영.원. 여어엉. 워어어언.



자, 이제 의미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백지였던 내 머릿속처럼.





15.

계절은 도돌이표 안에서 움직이듯 겨울까지 갔다 다시 봄으로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엄마와 할멈은 이런저런 일들로 티격태격하고 자주 깔깔대다가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말수가 줄어들었다. 해가 공기를 붉게 물들이면 할멈이 소주를 들이켜며 캬, 소리를 냈고 엄마는 가슴에서부터 나오는 목소리로 좋다, 하고 장단을 맞췄다. 캬, 좋다! 엄만 그 말의 뜻이 행복이라고 했다.

엄마는 인기가 많았다. 할멈과 함께 살게 된 뒤에도 몇 차례 연애를 했다. 할멈은 성격도 모난 엄마에게 남자들이 들러붙는 이유가 젊은 시절의 자기를 닮아서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입을 삐죽댔지만 결국은, “우리 엄마가 예쁘긴 했지.”라고 확인할 길 없는 말을 했다. 엄마의 남자 친구들을 궁금해한 적은 별로 없다. 엄마의 연애 패턴은 일정했다. 먼저 접근하는 건 늘 남자들이었지만 끝에 가서 매달리는 건 언제나 엄마였다. 할멈은 남자들이 원하는 건 그저 연애인데, 엄마가 원하는 건 내 아빠가 되어 줄 남자여서 그런 거라고 했다.

엄마는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녔다. 동그랗고 검은 눈에 늘 밤색 아이라이너를 그려서 그러지 않아도 큰 눈이 더 커 보였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는 미역처럼 까맸고 입술은 늘 붉게 칠해 뱀파이어를 연상시켰다. 이따금 나는 엄마의 옛 사진들을 들춰 보곤 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마흔이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사진 속의 엄마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옷차림이며 머리 모양, 생김새까지도 모두 비슷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늙지 않은 채 키만 조금씩 자란 것 같았다. 나는 ‘썩을 년’이라는 할멈의 입버릇에 기분 나빠하는 엄마를 위해 ‘썩지 않는 여자’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하지만 엄마는 입을 삐죽 내밀며 그 별명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할멈도 늙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색 머리는 더 검어지지도 희어지지도 않았고, 거대한 몸집이나 사발로 들이켜는 술의 양은 해가 가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우린 옥상에 올라가 카메라를 벽돌에 괴어 놓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늙지 않는 뱀파이어 엄마와 거인 할머니를 둔 소년인 나만이, 변하지 않는 두 여자 사이에서 홀로 쑥쑥 자라났다.



그해. 그 일이 있던 해. 그 겨울. 첫눈이 내리기 얼마 전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낯선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짧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줄 알았다. 그걸 떼려고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건 머리칼이 아니라 주름이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몰랐는데 꽤 깊이, 그리고 길게 파여 있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늙는 걸 알았다.

—엄마도 주름이 있네.

내 말에 엄마는 방긋 미소를 지었고, 그러자 주름이 길게 뻗어 갔다. 나는 점차 늙어 가는 엄마를 상상해 보았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엄마에게 남은 건 늙는 일밖에 없단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엔 웬일인지 웃음기가 지워져 있었다. 엄마는 무표정하게 먼 곳을 바라보다가 눈을 꾹 감았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늙어서 호호 할머니가 된 모습을 상상하는 거였을까. 하지만 엄마의 말은 틀렸다. 엄마에게 늙을 기회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16.

설거지를 하거나 바닥의 먼지를 닦을 때면 할멈은 딱히 멜로디랄 것도 없는 음에 가사를 실어 흥얼거리곤 했다.



여름이면 옥수수, 겨울이면 밤고구마.

맛있어요, 달아요, 어서어서 먹읍시다.



그건 할멈이 젊은 시절 고속터미널 역에서 팔던 것들이었다. 역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오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팔던 것들.

젊은 할멈이 유일하게 눈으로나마 호사를 누린 것은 일이 끝난 뒤 길고 긴 고속터미널 역 안을 쏘다니는 거였다. 그중에서도 할멈의 혼을 쏙 빼 간 건 부처님 오신 날과 크리스마스 풍경이었다. 늦봄에서 초여름이면 터미널 밖으로 연등이 줄지었고, 겨울이 되면 그 안은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가득 찼다. 자신의 일터였음에도 그런 풍경들은 할멈에게 동경의 세계였다. 조악하게 만든 연등이나, 가짜 나무인 크리스마스트리가 그렇게 가져 보고 싶었단다. 할멈이 옥수수와 군고구마를 팔아 모은 돈으로 떡볶이 가게를 얻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쁜 연등과 미니 크리스마스트리를 산 거였다. 계절은 상관없었다. 할멈의 떡볶이 가게엔 사시사철 연등과 크리스마스 장식이 사이좋게 달려 있었다.

할멈이 떡볶이 가게를 닫고 엄마가 헌책방을 연 뒤에도 할멈의 철칙 중 하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처님 오신 날과 크리스마스만큼은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거였다.

—예수나 부처가 진짜 성인인 건 분명하다. 겹치지도 않게 계절을 골라 태어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뭐니 뭐니 해도 크리스마스이브지.

할멈이 내 머릴 쓰다듬으며 말했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내 생일이었다. 그날이 되면 우린 늘 내 생일을 기념해 맛있는 밥을 먹으러 나가곤 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우리 셋은 나갈 채비를 했다. 아주 춥고 축축한 날이었다. 하늘은 흐렸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피부 밑으로 파고들었다. 코트를 여미면서도 나는 굳이 내 생일을 축하하러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나가지 않는 쪽을 택했어야 했다.





17.

시내는 인파로 술렁였다. 여느 크리스마스이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버스를 탄 지 얼마 안 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길은 끝없이 막혔고 라디오에선 십 년 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겠다며, 크리스마스인 내일까지 폭설이 이어질 거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내 기억에도 내 생일에 눈이 내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흩날리는 눈은 빠른 시간 동안 무서울 정도로 쌓여 갔고 도시를 삼킬 것처럼 끝없이 쏟아졌다. 잿빛이었던 도시의 풍경이 부드러워졌다. 그래서인지 버스에 탄 사람들도 꽉 막힌 도로 사정에 대해 별로 불만이 없었다. 모두들 홀린 것처럼 창밖을 내다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댈 뿐이었다.

—냉면을 먹어야겠다.

할멈이 툭 뱉었다.

—거기다 뜨끈한 고기만두.

엄마가 짭짭, 소리를 냈다.

—거기다 뜨거운 육수 추가요.

내가 이렇게 덧붙이자 모녀는 마주 보며 헤헤 웃었다. 얼마 전 내가 왜 사람들은 겨울에는 냉면을 잘 먹지 않느냐고 물은 걸 떠올린 모양이었다. 어쩌면 엄마와 할멈은 내가 그렇게 묻는 게 냉면이 ‘먹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졸다 깨길 반복하다 겨우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청계천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이제 세상은 온통 하얗기만 했다. 고개를 들자 허연 눈송이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어린아이처럼 하늘을 향해 혀를 내밀고 눈을 받아먹었다. 할멈이 예전에 가 본 적 있다는 골목길 안쪽 오랜 전통의 냉면집은 사라지고 없었다. 바지 끝단을 적신 물기가 점점 위로 올라와 종아리가 차가워질 때쯤 우리는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간신히 찾은 냉면집에 들어갔다. 즐비한 커피 전문점 사이에 있는 프랜차이즈 냉면집이었다.

평양식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인 대로, 면발은 이가 닿기 무섭게 뚝뚝 끊어졌지만 그뿐이었다. 육수에선 누린내가 났고 왕만두에선 탄내가, 냉면에선 사이다 맛이 났다. 냉면을 처음 먹어 보는 사람이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공들이지 않은 가벼운 맛이었다. 그런데도 할멈과 엄마는 그릇을 싹싹 비웠다. 때로는 맛보다 분위기가 식욕을 돋게 하나 보다. 그날은 물론 눈 때문이었다. 할멈과 엄마의 얼굴엔 시종일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커다란 얼음덩이를 입 안에 넣고 굴렸다.

—생일 축하한다.

할멈이 말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엄마가 내 손을 조물거리며 덧붙였다. 생일 축하해. 태어나 줘서 고마워. 어딘지 식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날들이 있는 거다.



다음 행선지를 정하지 않은 채 우리는 일어섰다. 할멈과 엄마가 계산을 하는 사이 나는 카운터 앞에 놓인 바구니에서 자두맛 캔디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구니 안에는 누가 먹고 남긴 자두맛 캔디의 빈 껍질이 덩그러니 하나 놓여 있었다. 내가 그걸 만지작거리자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사탕을 가져다줄 테니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할멈과 엄마가 먼저 바깥으로 나갔다. 여전히 눈은 펄펄 내리고 있었고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깡충깡충 뛰며 손을 뻗어 눈송이를 잡으려 애썼다. 할멈은 그런 엄마를 보며 배를 잡고 웃다가 창 너머로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냈다. 종업원이 다가와 커다란 사탕 봉지를 뜯었다. 작은 바구니에 선물처럼 낱개의 캔디들이 넘치도록 쏟아졌다.

—괜찮죠? 크리스마스이브니까.

나는 두 주먹 가득 사탕을 움켜쥔 채 종업원에게 물었다. 종업원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에선 여전히 엄마와 할멈이 웃고 있었다. 두 여자 앞으로 거리 공연을 펼치는 혼성 합창단의 행렬이 길게 지나갔다. 모두들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빨간 망토를 두른 채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나는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사탕 봉지의 뾰족한 감촉을 느끼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 순간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함성을 내질렀다. 캐럴 소리가 잦아들었다. 또다시 이어진 함성은 몇 개의 비명으로 갈라졌다. 합창단의 대열이 흐트러져 있었다. 사람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급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유리문 너머에서 한 남자가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찔러 대고 있었다. 우리가 가게에 들어오기 전부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차림새와 달리 한 손엔 칼이, 한 손엔 망치가 들려 있었다. 남자는 내리는 눈을 모두 찌르겠다는 듯 격한 몸짓으로 양손을 휘둘렀다. 그가 합창단을 향해 다가갔고 몇 사람이 급히 전화기를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엄마와 할멈에게서 멈췄다. 그가 방향을 틀었다. 할멈이 엄마를 잡아끌었다. 다음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남자가 엄마의 머리 위로 망치를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엄마가 바닥에 피를 흩뿌리며 나동그라졌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밀었지만 할멈이 소리를 지르며 몸으로 막아섰다. 남자는 망치를 땅에 떨구곤 다른 손에 쥔 칼로 공기를 몇 차례 벴다. 나는 유리문을 쾅쾅 두드렸지만 할멈은 고개를 저으며 온 힘을 다해 문을 막았다. 할멈은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내게 무언가를 반복해 말했다. 그러는 동안 할멈의 뒤로 남자가 다가왔다. 뒤를 돌아 남자를 본 할멈이 커다랗게 포효했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이었다. 할멈의 거대한 등이 내 눈앞을 가렸다. 유리에 피가 튀었다. 빨갛게. 더 빨갛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점점 더 빨개지는 유리문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저 멀리 얼어 있는 전경들이 보였다. 마치 남자와 엄마와 할멈이 한 편의 연극이라도 벌이고 있다는 듯 모두들 꼼짝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가 관객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18.

희생자들은 모두 남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남자는 매우 전형적인, 보통의 삶을 살던 ‘소시민’이었다. 그는 사 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십사 년간 영업직으로 일하다가 경기 침체로 갑작스러운 구조 조정을 당했다.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차렸지만, 이 년이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그러는 와중에 빚을 얻었고 가족은 그를 떠났다. 그 후 남자는 집 안에서만 생활했는데 그 시간이 자그마치 삼 년 하고도 반이었다. 그는 반지하 방에 기거하며 근처 슈퍼에서 물건을 사거나 어쩌다 구립 도서관에 들르는 것 말고는 일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들은 무술이나 호신술, 칼 쓰는 방법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와 달리 집에서 발견된 책들은 성공의 법칙이나 긍정을 습관화하는 방법이 담긴 자기 계발서들이었다. 남자의 초라한 책상 위에는 보란 듯이 크고 거친 필체로 쓴 유서가 놓여 있었다.



오늘 누구든지 웃고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남자의 일기장에는 그가 세상을 증오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즐거울 것 없는 세상에서 미소를 띤 채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살의를 느낀다는 암시도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었다. 남자의 삶과 기록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자, 대중의 관심은 사건 자체보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조명으로 바뀌었다. 남자의 삶이 자기네들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중년 남자들은 비탄에 빠져 탄식했다. 남자에 대한 동정 여론이 퍼지기 시작했고, 초점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대한민국의 현실로 옮겨 갔다. 누가 죽었는지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사건은 얼마간 뉴스를 장식했고 기사엔 ‘누가 이 남자를 살인자로 만들었나’, ‘웃으면 죽어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 따위의 표제가 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꺼지듯이 그마저도 사람들의 입에 더는 오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열흘이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엄마였다. 하지만 뇌가 깊은 잠에 빠져 다시 깨어날 가능성은 무척 낮았고 깨어난다 하더라도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닐 거라고 했다. 희생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나만 빼고는 모두가 울고 있었다. 처참하게 죽어 버린 가족 앞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몸짓과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온 여경 하나는 유족들에게 절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조금 뒤 나는 그녀가 복도 끝에서 나이 많은 남자 경찰에게 혼나고 있는 걸 봤다. 앞으로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보게 될 거야. 그러니까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 해. 순간 그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가 하던 말을 멈췄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꾸벅 인사를 하곤 화장실로 향했다.

사흘간의 장례 내내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나를 두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다양한 추측을 하며 속닥거렸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럴 거야, 아직 어리니 뭘 알겠어, 엄마도 죽은 거나 다름없고 이제 고아나 마찬가진데 실감이 안 나니 저러지.

남들은 내게 슬픔이나 외로움, 막막함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안에는 감정 대신 질문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엄마와 할멈은 뭐가 그렇게 우스워서 깔깔댔던 걸까.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우린 냉면집을 나와 어디로 향했을까.

그 남자는 왜 그랬을까.

텔레비전을 부수거나 거울을 깨뜨리지 않고 왜 사람을 죽인 걸까.

왜 더 늦기 전에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을까.

왜.



하루에도 수만 번씩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원점으로 회귀해 처음부터 되풀이됐다. 하지만 내가 아는 답은 하나도 없었다. 경찰이나 근심 어린 표정의 심리 상담사에게도 내 마음속의 질문들을 털어놓아 보았다. 그들이 무엇이든 말해도 좋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침묵했고 몇몇은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긴,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할멈도 그 남자도 모두 죽어 버렸다. 엄마는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사라졌다. 나는 질문을 입 밖에 내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분명한 건, 엄마와 할멈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할멈은 영혼과 육신이 모두, 엄마는 껍데기만 남은 채로. 이제 내가 아닌 누구도 두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남아야 했다.

장례가 끝난 다음, 정확히 내 생일로부터 여드레 후, 나는 한 살을 더 먹었다. 그렇게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이제 완전히 혼자였다. 남은 건 엄마의 헌책방에 쌓인 무수한 책뿐이었다. 그 외에는 대부분의 것이 사라졌다. 더는 집 안에 연등과 반짝이는 전구를 달 필요도, 희로애락애오욕을 외울 일도, 내 생일에 밥을 먹으러 인파를 뚫고 시내까지 나올 이유도 없어졌다.





19.

병원에는 매일 갔다. 엄마는 가만히 누워서 숨만 쉬고 있었다. 중환자실에 있던 엄마는 얼마 뒤에 6인실로 옮겨졌다. 나는 매일같이 가서 엄마 옆에 앉아 햇살을 쬐다 왔다.

의사는 냉정히, 깨어날 가망이 없다고 했다. 앞으로도 연명 외엔 별 의미가 없는 거라고. 간호사는 표정 변화 없이 엄마의 대소변을 갈아 냈다. 나와 힘을 합쳐 엄마의 몸을 들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때마다 뒤집었다. 커다란 짐을 취급하는 것과 비슷했다. 의사는 어떻게 할지 결정한 뒤 알려 달라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이대로 병원비를 계속 내며 살 것인지, 조금이라도 저렴한 교외의 요양 병원으로 옮길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할멈의 사망 보험금이 어느 정도 나와 당장 먹고사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언제든 나 혼자 남겨질 것을 대비해 엄마가 그런 걸 마련해 놨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할멈의 사망 신고를 하러 갔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조용히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얼마 후 주민센터에서 파견한 사회 복지사가 찾아왔다. 집의 상태를 살피더니 청소년이므로 시설로 인계될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쉼터나 보호소 같은 곳.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건 사실 그 시간에 정말로 생각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시간을 달라는 뜻이다.





20.

집은 적막했다. 종일 내 숨소리만 들렸다. 두 사람이 남긴 글자들이 벽에 붙어 있었지만 가르쳐 줄 사람 없이는 의미 없는 장식에 불과했다. 시설에 가면 내 삶이 어떻게 될지는 사실 좀 뻔하다. 나는 상관없지만 엄마가 어떻게 될지는 잘 그려지지 않았다.

엄마가 내게 무슨 조언을 할지 떠올려 봤다. 하지만 엄마는 대답할 수가 없다. 나는 엄마가 남긴 말들을 복기하며 힌트를 얻고자 했다.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상적’으로 살 것.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하릴없이 뒤졌다. ‘폰과 대화하기’라는 앱이 눈에 띄었다. 그걸 열자 작은 대화창이 떴고 작은 이모티콘이 나타났다.



안녕.



전송을 누르기가 무섭게



안녕.



이라는 단어가 따라 나왔다.



잘 지내?



라고 썼다.



응. 넌?



나도.



굿.



정상적인 게 어떤 거니?



남들과 비슷한 것.



한동안 정적. 이번엔 좀 길게 써 봤다.



남들과 비슷하다는 건 뭘까.

사람은 다 다른데 누굴 기준으로 잡지?

엄마라면 내게 무슨 말을 했을까.



밥 다 됐다, 나와라.



전송 버튼에 손이 닿았는지도 몰랐는데 말꼬리를 자르듯 답이 떴다. 조금 더 해 봤지만 계속 의미 없는 말들만 나왔다. 얘한테서 힌트를 얻긴 글렀다. 작별 인사 없이 앱을 껐다.

학교에 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있었다. 그 전까지 혼자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다.



보름 만에 책방 문을 열었다. 책장 사이를 걷자 먼지가 피어올랐다. 간간이 손님들이 들렀다.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해 물건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 엄마가 마지막으로 사려고 했던 중고 동화 전집을 좋은 가격에 사들여 가장 잘 보이는 곳에다 진열해 두었다.

종일 몇 마디 내뱉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상황에 맞는 대화를 짜내려고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었다. 손님에겐 예, 아니요, 잠깐만요 정도면 충분했다. 그 외에는 카드를 긁거나 거스름돈을 헤아려 주거나 기계처럼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어느 날 근처에서 어린이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들렀다. 이따금 할멈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던 아주머니였다.

—방학이라 아르바이트하는구나. 할머니는 어디 가셨니?

—죽었어요.

아주머니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눈썹을 강하게 찌푸렸다.

—네 나이 때 그런 농담도 한다는 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할머니가 어떻게 생각하시겠니.

—진짠데요.

아주머니는 팔짱을 끼더니 언성을 높였다.

—그럼 말해 보렴.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다는 거니.

—칼에 찔렸어요. 크리스마스이브 날에요.

—세상에…….

그녀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뉴스에 나온 그 일이구나. 하늘도 무정하시지…….

아주머니가 성호를 긋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내게서 무언가가 전염되기 전에 얼른 피해야 한다는 듯이.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계산 안 하셨어요.

아주머니의 낯빛이 붉어졌다.

그녀가 나간 후 나는 잠깐, 엄마라면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말하기를 바랐을지 생각해 봤다. 아주머니의 반응을 봤을 때 내가 실수를 했다는 건 명백하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 실수한 건지, 그 실수를 실수가 아닌 것으로 만들려면 어떤 부분이 수정됐어야 하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해외여행을 갔다고 할 걸 그랬나. 아니다. 그랬더라면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주머니는 계속 질문을 던졌을 거다. 아니면 책값을 받지 말았어야 할까. 그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침묵은 금. 그 속담을 참고하기로 했다. 웬만한 질문엔 답하지 말 것. 그런데 그 웬만함의 기준도 헷갈린다.



갑자기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글자라곤 지나가는 건물의 간판을 보는 게 전부였던 할멈이, 우연히 읽고 재미있다고 했던 책. 나는 1986년에 2,500원이라는 가격으로 팔리던 손바닥만 한 문고판 책을 간신히 찾아냈다. 『현진건 단편선』. 그중 「B 사감과 러브레터」.

B 사감은 밤중에 학생들의 러브레터를 훔쳐 읽으면서, 남녀 목소리를 번갈아 내며 1인극을 펼친다. 그 장면을 몰래 지켜본 세 명의 여학생은 저마다 반응이 다르다. 하나는 B 사감이 우습다며 비웃고 다른 하나는 B 사감이 무섭다며 몸을 떨고, 세 번째 여학생은 B 사감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늘 한 가지 정답을 제시하던 엄마의 가르침에는 좀 위배됐지만 나는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엄마는 당황스러워했다. 한참 동안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엄마는 답을 짜냈다. 이야기가 우는 여고생으로 끝맺어져 있기 때문에, B 사감의 행동에 대한 적절한 반응은 세 번째 학생의 ‘운다’가 맞단다.

—하지만 두괄식이라는 게 있잖아요. 첫 번째 학생이 보인 반응이 맞는 것일 수도 있죠.

엄마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지지 않고 물었다.

—그럼 엄마도, B 사감의 1인극을 봤다면 울었을 것 같아요?

옆에서 할멈이 끼어들었다.

—네 엄만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몰라서 오밤중에 깨지도 않았을 거다. 방에서 자는 엑스트라 여학생 중 하나였겠지.

껄껄 웃는 할멈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갑자기 책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중년의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사라져 버렸다. 카운터 위엔 그가 남긴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2층으로 올라오라는 메시지였다.





21.

책방은 야트막한 2층짜리 건물의 1층에 있었다. 2층은 빵집이었다. 빵집이 2층에 있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허름한 간판에는 제대로 된 가게 이름도 없이 ‘빵’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할멈도 처음 간판을 봤을 땐 “맛없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간판만 보고 어떻게 맛을 짐작할 수 있는지 나로선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거기서 취급하는 빵은 곰보빵과 우유식빵, 크림빵이 전부였고 그나마 무슨 배짱인지 오후 4시면 칼같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가게가 꽤 잘돼서 사람들이 1층까지 줄을 선 걸 여러 번 봤다. 덕분에 줄의 끝에 선 손님들이 잠깐씩 우리 가게에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엄마도 가끔 빵을 사 왔다. 빵 봉지엔 ‘심재영 제과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심재영은 빵집 사장인데, 엄마는 그를 심 박사라고 불렀다. 맛을 본 할멈에게선 더는 맛없게 생겼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뭐, 그저 그랬다. 여타 음식들이 다 그렇듯. 아무튼 가게 안까지 들어가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심 박사가 내게 크림빵을 하나 권했다. 한입 베어 물자 병아리색의 찐득한 크림이 비어져 나왔다. 심 박사는 50대 초반이었지만 머리가 눈처럼 하얘서 60대로까지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맛있니?

—느껴지긴 해요, 맛이.

—다행이네, 맛이 없진 않아서.

심 박사가 가볍게 웃었다.

—여기서 혼자 일하세요?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구조랄 것도 없었다. 뻥 뚫린 공간에 계산대와 진열대, 식탁 하나가 전부였다. 가운데 놓인 칸막이 뒤쪽이 반죽을 만들고 굽는 곳 같았다.

—응. 내가 사장이자 유일한 종업원이란다. 그게 편해.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거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긴 대답이었다.

—그런데 절 보자고 하신 이유는요?

박사는 내게 우유를 따라 주었다.

—네게 생긴 일은 참으로 유감이다. 꽤 고민을 하다가 작게나마 돕고 싶어서 불렀다.

—어떻게요?

—글쎄. 초면에 말이 잘 안 나오겠지만, 네 쪽에서 필요한 거라든가 부탁할 건 없을까?

아까부터 심 박사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딱딱 두드리고 있었다. 버릇인 것 같은데 계속 듣고 있자니 거북했다.

—그 소리를 안 내 주셨으면 좋겠네요.

박사가 안경 너머로 날 보더니 이내 빙그레 웃었다.

—디오게네스라고 들어 봤니? 그 얘기가 떠오르는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뭐든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대왕의 그림자가 태양을 가리니 비켜 달라고 했지.

—전 선생님을 보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떠오르진 않는데요.

이번엔 그에게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네 얘길 자주 하셨단다. 특별한 아이라고.

특별. 엄마가 그 단어를 어떤 의미로 썼을지 짐작이 갔다. 박사가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었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건 지금은 멈출 수 있지만 습관이라 쉽진 않을 거다. 그리고 내가 기대한 부탁은 좀 더 지속적인 거였는데.

—지속적인 거요?

—혼자서 생활하기 곤란하다면 경제적인 도움도 좋고.

—보험도 있고 뭐, 일단은 괜찮아요.

—엄마가 혹시나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잘 부탁한다고 자주 말했었다. 우린 꽤 친한 편이었거든. 네 엄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었지.

그가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보러 가셨나요, 병원에?

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가 아래로 조금 처졌다. 엄마 일을 슬퍼하는 거라면 엄만 조금은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게 엄마가 알려 준 팁이었다. 내 슬픔을 남이 같이 슬퍼한다면 기쁜 일이라고. 마이너스 마이너스 이퀄 플러스의 원리라고 했다.

—그런데 왜 박사라고 불리세요?

—의사였거든. 지금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직업 전환이네요.

박사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차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유머로 의도하지 않은 말들에도 늘 웃어 주었다.

—책을 좋아하니?

—네. 전에도 엄마를 도와서 가게에서 일했었어요.

—그럼 이렇게 하자. 가게를 계속하렴. 이 건물의 주인은 나란다. 아르바이트로 계속 일하면 내가 월급을 주마. 생명 보험금은 네가 대학에 가거나 중요한 일이 생길 때 쓰고, 생활비는 일단 아르바이트비로 충당하렴. 네가 동의만 해 준다면 복잡한 일들은 대충 처리해 놓으마.

나는 집으로 찾아온 사회 복지사한테 했던 것처럼,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예사롭지 않은 제안을 하면 일단 시간부터 끌라고 배웠으니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렴. 너랑 얘기 나누는 게 생각보다 즐거워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책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팔도록.

나가기 전 그에게 물었다.

—혹시 엄마와 사귀셨나요?

심 박사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가늘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니? 우린 친구였단다. 꽤 좋은 친구.

그의 얼굴을 감쌌던 웃음기가 천천히 사라져 갔다.





22.

심 박사의 제안을 수락했다. 여러모로 내게 위험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더 이상 곤란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고 일상은 지속되었다. 나는 매출액을 늘려 보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매일 상태가 좋은 인기 도서나 공무원 수험서 따위를 검색하고 물량을 확보하며 시간을 보냈다. 추운 날씨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겨 온종일 입 한 번 뻥긋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어쩌다 물을 마시기 위해 입을 열면 단내가 코로 훅 올라왔다.

책상 구석에 세워 둔 작은 액자 속의 우리 셋은 변함이 없었다. 웃고 있는 모녀와 표정 없는 나. 이따금씩 엄마와 할멈이 여행을 간 건 아닐까 하는 헛된 공상을 하곤 했다. 물론 결코 끝날 수 없는 여행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내 세계의 전부였다. 하지만 할멈과 엄마의 부재로 알게 된 건 세상에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는 거였다. 한 명씩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내 인생에 등장한다. 그 첫 번째가 심 박사였다. 박사는 가끔씩 책방에 들러 빵을 놓고 가거나 내 어깨를 꽉 잡으며 힘내라고 얘기했다. 힘이 빠지지도 않았는데.

땅거미가 내리면 엄마한테 갔다. 엄마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다. 이 상황을 알고 있다면 엄만 나한테 뭘 바랐을까. 종일 침대 곁을 지키면서 몇 시간에 한 번씩 자기 몸을 뒤집어 주기를 바랐을까. 아닐 거다. 엄만 내가 학교에 다니는 걸 원할 거다. 그게 바로 내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삶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매서웠던 바람은 조금씩 기운을 잃어 갔다. 설이 다가오고 밸런타인데이가 지나고 사람들의 코트가 얇아지고 중학교를 졸업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는 연일 1, 2월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는 푸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3월이 되었다. 유치원생은 초등학생이 되고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는 때였다. 나도, 고등학생이 되기 위해 새로운 학교로 갔다. 다시 선생님과 아이들을 매일 만나야 했다.

그러자, 조금씩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3.

새로 다니게 될 학교는 지은 지 이십 년쯤 된 남녀 공학 고등학교였다.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그다지 높진 않았지만 특별히 아이들이 드세다거나 안 좋다는 소문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심 박사가 입학식에 함께 가 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나는 흔해 빠진 입학식 풍경을 멀찌감치서 홀로 구경했다. 건물은 붉은색이었는데, 최근에 내부를 새로 꾸민 탓에 건물 전체에 페인트 냄새며 건축 자재 냄새가 들어차 있었다. 교복이 아직 몸에 맞지 않고 뻣뻣했다.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음 날 나는 담임에게 불려 갔다. 올해로 부임한 지 이 년째가 되는 여자 선생님으로 나보다 고작 열 살 정도 많아 보였다. 담당 과목은 화학이었다. 담임은 상담실의 낡은 보라색 소파에 몸을 던지듯 털썩 앉았고 그 충격만큼의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주먹손을 쥐며 콜록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캐햄, 하고 헛기침을 했다. 여기서는 선생님이지만 어쩌면 집에선 귀염받는 막내딸쯤 될지 모른다. 줄기차게 이어지던 캐햄 소리가 거슬릴 때쯤 담임이 경쾌하게 운을 뗐다.

—힘들었지? 내가 뭘 도와야 할까?

담임은 내가 겪은 일을 대강 알고 있었다. 유족들의 심리 상담사와 변호사가 학교에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담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담임은 입꼬리를 양쪽으로 바짝 당긴 채 눈썹을 위로 살짝 올렸다.



이튿날 종례 시간에 일이 터졌다. 담임은 그사이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느라 고생한 것 같았지만, 누구도 그런 모습에 감동하지 않았다. 그녀가 수고롭게 외운 아이들의 이름은, 누구야 조용히 해, 누구야 좀 앉아 줄래, 따위로밖에 쓰이지 않았으니까. 학생들의 주목을 이끌어 내는 데 소질이 없는 사람인 건 분명했다. 삼 초에 한 번씩 헛기침을 하는 게 습관인지 중간중간 캐햄, 소리가 이어졌다.

—자, 그리고.

갑자기 담임이 톤을 높였다.

—우리 반 친구가 아주 마음 아픈 일을 겪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가족을 잃은 친구가 있어. 모두들 그 친구에게 격려의 박수를 쳐 주자. 선윤재, 일어나.

담임이 시키는 대로 했다.

—윤재야, 힘내라.

담임은 먼저 그렇게 말하더니 양팔을 높이 들어 박수를 쳤다. 예능 프로에서 본, 녹화 현장 뒤에서 방청객의 박수를 유도하는 에프디 같았다.

아이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여기저기서 치는 둥 마는 둥 박수 시늉만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개중 성의껏 치는 아이들이 몇 있어서 그나마 박수 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박수는 짧게 사그라들었다. 그 뒤를 이은 건 정적에 가까운 고요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였다.

전날 담임이 내게 뭘 도와줄까 물었을 때 괜찮다고 말한 건 잘못된 답이었다.

—신경 꺼 주시는 게 돕는 거예요.

라고 말했어야 맞다.





24.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검색 창에 ‘크리’라고 치기만 해도 자동 완성으로 크리스마스이브 살인, 크리스마스이브 사건 따위의 말이 떴고, 모친과 조모를 잃은 16세 선모 군에 관한 기사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찍힌 내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너무나 조악한 수준이라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복도 멀리에서 나를 가리키거나 내가 지나갈 때 공공연히 수군대는 아이들도 있었고, 급식 시간에 일부러 내 옆에 와서 앉거나 말을 걸어 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업 중에 고개를 돌리면 영락없이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모두가 궁금해하는 걸 입 밖으로 냈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복도 창밖으로 작은 그림자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나뭇가지가 창문에 닿았다 떨어졌다 하고 있었다. 나뭇가지 끝엔 조그마한 개나리 순이 돋아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나뭇가지를 반대 방향으로 틀어 주었다. 꽃이 햇볕을 받아야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복도를 메웠다.

—야, 엄마가 눈앞에서 죽었을 때 기분이 어땠냐?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몸집이 작은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들에게 말대답을 자주 하고 자기의 행동으로 좌중에 어떤 분위기가 생겨나길 바라는 아이. 그런 아이들은 어딜 가나 있다.

—엄만 안 죽었어. 죽은 건 할머니야.

내가 답하자 그 애의 입에서 호오, 하는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주변을 훑으며 눈이 마주친 몇몇과 낄낄대기도 했다.

—아 그래? 미안. 다시 물어볼게. 할머니가 눈앞에서 죽는 걸 본 기분은?

그 애가 다시 물었다. 주변에서 여자아이들이 어우 야, 뭐야, 하면서 야유했다.

—왜 그래, 너희도 다 알고 싶잖아.

그 아이가 양쪽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어깨를 들썩하며 말했다. 조금 전보다 목소리의 크기가 줄어 있었다.

—알고 싶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들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창문을 닫고 교실로 들어갔다. 주변은 금세 다시 소란해졌지만 일 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25.

그 일로 나는 좀 유명해졌는데, 물론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별로 좋지는 않은 유명세였다. 내가 복도를 지나갈 때면 아이들은 바다가 갈라지듯 양옆으로 비켜섰다. 곳곳에서 쑥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야, 쟤. 생긴 건 평범하네, 따위의 말들. 나를 보러 1학년 복도까지 찾아온 2학년이나 3학년생도 있었다. 살인 현장을 직접 본 아이. 그것도 가족이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 걸 본 아이. 그런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

곧 소문은 크기를 불려 나갔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나와 한 반이었다거나 나의 기행을 직접 목도했다는 증언들이 잇따랐다. 모든 소문이 그렇듯이 한껏 과장되어 있었다. 아이큐가 200이라거나, 가까이 가면 칼로 찌를지도 모른다거나. 심지어 엄마와 할머니를 죽인 게 나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엄마는 늘 집단생활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엄마가 내게 그 지난한 교육을 시킨 것도, 내가 그 희생양이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할멈이 사라진 지금 엄마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어떤 얘기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금세 눈치챘고, 그러자 별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짓궂은 농담을 퍼부었다. 더 이상 경우의 수를 늘려 가며 예상되는 대화를 만들어 줄 엄마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교사 회의에서도 내 얘기가 나왔다. 내가 튀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나의 존재 자체로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고 학부모들이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선생님들은 나의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 후 학교로 찾아온 심 박사는 담임과 긴 면담을 했고, 그날 저녁 우리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짜장면이 다 없어져 갈 때쯤 심 박사는 본론을 꺼냈다. 빙빙 돌려 말했지만, 요약하자면 학교라는 공간이 내게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학교를 그만두라는 말인가요?

심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너에게 그러라고 할 수 없지. 내 말은,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이런 식의 대우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전 별로 상관없어요. 제가 어떤 상태인지 아시잖아요. 엄마한테 들으셨다면.

—엄마도 네가 이렇게 지내는 걸 원하지는 않았을 거다.

—엄만 제가 정상적으로 살길 원하셨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평범…….

내가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과 같은 것. 굴곡 없이 흔한 것.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졸업해서 운이 좋으면 대학에도 가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얻고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런 것. 튀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생각해 보면 할멈이 엄마에게 바란 것도 평범함이었을지 모르겠다. 엄마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박사의 말대로 평범하다는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입에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게는 더욱 어려운 일일 거다. 나는 평범함을 타고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으니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니까. 그래서 나는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평범해지는 것에.

—학교는 계속 다닐래요.

그게 그날의 결론이었다. 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어떻게’겠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이거다. 머리라는 건 쓰면 쓸수록 좋아진단다. 나쁘게 쓰면 나쁜 머리가 좋아지고 좋게 쓰면 좋게 발달되지. 네가 특정 부분에서 남들보다 취약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 달라질 수도 있을 거야.

—연습은 충분히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이렇게.

나는 입꼬리를 양쪽으로 쓱 올렸다. 하지만 내 미소가 다른 사람들의 미소와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말씀드려 보렴.

—뭘요?

—네가 고등학생이 되었고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고 말이다. 엄마가 좋아하실 거다.

—그럴 필욘 없어요. 엄만 아무것도 듣지 못하니까요.

심 박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도, 그건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26.

빗줄기가 창문에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봄비다. 엄마는 비를 좋아했다. 비 냄새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빗소릴 들을 수도, 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비 냄새라니. 그래 봤자 사실은 마른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물비린내였을 거다. 엄마 옆에 가만히 앉아 손을 잡았다. 피부가 많이 거칠어졌다. 엄마의 뺨과 손등에 장미 향 로션을 발라 주었다. 병실에서 나와 식당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열리는 순간,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괴물과 만나게 한 사람. 내 삶에 그 아이를 끌어들인 남자.



은빛 머리의 중년 남자였다. 깔끔하게 차려입었지만 어깨가 처져 있었고 탁한 눈엔 물기가 많았다. 표정이 밝았다면 꽤 잘생긴 얼굴이라고 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핼쑥하고 어두웠다.

나를 본 순간 남자의 눈동자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머잖아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에게 예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건 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예감을 ‘느낀’ 건 아니니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예감이라는 게 ‘그냥 문득 느껴지는’ 건 아니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은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조건과 결과로 나뉘어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무의식적으로 결과를 예측하게 된다. 그러니까 예감이란, 사실은 매우 인과적인 데이터다. 과일을 믹서에 갈면 주스가 될 것을 아는 것처럼. 남자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나에게 그런 ‘예감’을 주었다.

그 뒤로도 병원에 갈 때면 남자를 자주 마주쳤다. 식당에서건 복도에서건 시선을 의식하고 돌아보면 언제나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책방으로 나를 직접 찾아왔을 때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서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는 철학 서가를 지나쳐 문학 코너에 한동안 머문 뒤 책 한 권을 빼 카운터로 왔다.

얼굴 가득 미소가 담겨 있었지만, 남자는 왠지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런 건 어딘가 ‘불안한’ 거라고 엄마가 말했었다. 그는 책을 내밀며 가격을 물었다.

—백만 원요.

—생각보다 비싸구나.

남자가 책을 앞뒤로 뒤적였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니? 초판본도 아닌데. 어차피 번역서여서 초판본이라고 해도 별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책의 제목은 ‘데미안’이었다.

—어쨌든 백만 원이에요.

그건 엄마의 책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엄마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한 책. 팔지 않을 책이었다. 하필 그걸 고르다니 용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남자가 숨을 들이켰다. 면도한 지 며칠이 지났는지 수염이 삐죽이 자라나 있었다.

—먼저 내 소개를 해야겠구나. 나는 윤권호라고 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지. 인터넷에도 검색하면 나온단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신원이 보장된 사람이라는 걸 말하려는 거다.

—얼굴은 알아요. 병원에서 몇 번 마주쳤잖아요.

남자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기억해 주니 고맙구나. 네 보호자라는 심 박사도 만나 봤다. 너한테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에 대해서도 들었지. 네가 특이한 아이라는 것도. 심 박사가 너와 직접 얘기해 보라고 해서 찾아왔단다. 난 너한테 부탁을 하려고 온 거거든.

—뭔데요?

그는 한동안 답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부탁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그 부탁을 말씀하시면 돼요.

—듣던 대로 넌 참, 명료하구나.

남자가 잠깐 웃었다.

—넌 엄마가 편찮으시지? 나는 아내가 아파서 누워 있단다. 아내는 곧 떠날 거다. 어쩌면 며칠 안에…….

남자의 등이 새우처럼 천천히 앞으로 말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게 부탁하려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내 아내를 만나러 나랑 같이 가 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두 번째는…….

그가 다시 심호흡을 했다.

—아내 앞에서 우리 아들인 것처럼 행동해 줄 수 있겠니? 어려울 건 없을 거야. 내가 해 달라는 말을 몇 마디 해 주면 된다.

흔한 부탁은 아니었다. 자주 들어 보지 못한 건, 이상한 거다. 이유를 물었다. 남자는 일어서서 책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어떤 말이든 꺼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았다.

—우린 십삼 년 전에 아들을 잃어버렸단다.

남자가 운을 뗐다.

—그 애를 찾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소용없었지. 우린 부유했고 난 유학을 다녀와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됐다. 아내도 커리어가 훌륭했고. 나도 아내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잃고는 모든 게 달라졌단다. 우리 관계는 어그러졌고 아내는 병들었지. 나에게도 쉽지 않은 세월이었어. 네게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요?

남자의 말이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물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단다. 아들일지도 모르는 아이가 있다고. 그래서 난 그 애를 만나러 갔지…….

남자는 말을 멈추고 입술을 한참 동안 꽉 깨물었다.

—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아내가 꿈꾸었던 아들을 말이야.

남자는 ‘꿈꾸었던’에 힘을 주었다.

—찾은 아들은 꿈꾸었던 모습이 아닌가요.

—그것까진 말하기 힘들구나. 아니, 설명하기가 어려워.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왜 저죠?

—이 사진을 보렴.

그가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실종 아동을 찾는 전단지였다. 서너 살가량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의 사진 옆으로, 최근 모습 추정 사진이 있었다. 글쎄, 나와 닮았다면 닮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구체적인 생김새보다는 분위기가.

—찾은 아들이 이렇게 안 생겼나요?

이해가 가지 않아 재차 물었다.

—아니. 이 사진과 비슷하단다. 그러니까, 너와도 조금은 닮았다고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앤 지금 자기 엄마를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다. 제발 부탁이다. 한 번만 도와 다오……. 네 엄마의 병실을 더 좋은 곳으로 옮겨 주마. 간병인도 쓸 수 있게 해 주고. 그거 말고도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가능한 한 들어주마.

남자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그의 직업과 가족관계,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딱히 해가 되지 않는다면 도와주는 편이 좋다.’ 할멈의 조언이 떠올랐다. 다음 날 그가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곤이를 먼저 알았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 거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나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곤이에게서 뭔가를 영원히 빼앗아 버린 거였으니까.





27.

갖가지 꽃이 병실을 장식하고 있다. 여기저기 켜 놓은 밝은 전구들이 따뜻하게 빛난다. 엄마가 있는 6인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병실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본 호텔 방 같았다. 아줌마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인 듯했다. 꽃향기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벽지까지 꽃무늬라 눈도 어질어질했다. 병원에 꽃을 들이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고 들었는데, 허용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저씨가 내 팔에 손을 두른 채 천천히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꽃에 둘러싸인 아줌마는 벌써부터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본 아줌마의 얼굴은 영화에서 본 시한부 환자의 얼굴과 비슷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도 얼굴에 내려앉은 잿빛 그늘을 지우진 못했다. 그녀가 나를 향해 나뭇가지 같은 손을 뻗었다. 뺨에 손이 닿았다.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손이었다.

—너구나. 너야. 이수야. 우리 아들. 내 귀여운 아들, 왜 이제야 왔니…….

아줌마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 몸으로 그렇게 울 힘이 남아 있다는 게 의아했다. 그녀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몸이 가루가 돼서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 난, 엄만 말이야, 너랑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어. 정말로.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네가 커 가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지……. 그런데 사는 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구나. 그런데도 이렇게 잘 자라 주었네. 고마워.

아줌마는 고맙다는 말을, 미안하다는 말과 번갈아 열 번쯤 하며 또 울었다. 그러더니 애써 웃음을 지었다. 거기 있는 삼십 분 내내 아줌마는 내 손을 잡고 뺨을 쓰다듬었다. 얼마 안 남은 삶의 기운을 모두 나한테 쏟아붓는 것 같았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아줌마가 잠깐 말을 멈추었을 때 아저씨가 눈짓을 주었고, 그때 미리 정해진 말을 했을 뿐이다. 좋은 가정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랐고, 이제 아빠의 곁에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러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기력이 다했는지 아줌마의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안아 봐도 되겠니.

그게 아줌마가 내게 던진 마지막 말이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두 팔이 내 등을 꽉 안았다. 단단한 덫에 걸린 것처럼,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심장 고동이 내게 전해져 왔다. 몹시 뜨거웠다. 곧 아줌마의 팔이 힘없이 풀렸다. 잠이 든 거라고, 곁에 있던 간호사가 말했다.





28.

아줌마는 한때 잘나가는 기자였다고 한다. 기지 넘치는 글을 써내고, 남들은 좀처럼 던지지 않는 용감한 질문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던 당차고 활기찬 기자. 다만 일이 바빠서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날, 아줌마는 모처럼 휴가를 내고 아이와 둘이 놀이동산에 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에 아이를 안고 올라탔다. 햇살이 따뜻한, 즐거운 소풍이었다. 아줌마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줌마는 한 번 더 타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내려와 전화를 받았다. 짧은 통화였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자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손을 놓은 기억조차 없었다.

시시티브이가 지금처럼 모든 곳에 설치되어 있던 때도 아니고 그나마도 사각지대가 많았다. 오랜 수사에도 아이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부부는 아이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희망은 차츰 희미해져 갔다. 살아 있기만을, 이왕이면 좋은 집에 있기를 기도했지만 밤이건 낮이건 끔찍한 상상에 시달려야 했다. 아줌마는 스스로를 끝없이 책망했고 그녀가 좇던 성공이 한낱 허울 좋은 신기루였음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이 서서히 아줌마를 병들게 했다. 아저씨는 아이를 잃어버린 데 아내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자신도 외로운 사람이었기에 아내마저 잃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병든 아줌마에게 언젠간 아들이 돌아올 거라는 말은 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나를 만나기 얼마 전 아저씨, 그러니까 윤 교수는 어느 보호 시설에서 연락을 받았다.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듣고 그곳을 방문한 그는 십삼 년 만에 자신의 아들을 다시 만났다. 하지만 아들은 당장 엄마를 만날 수 없는 처지였다. 왜냐하면 그 애가 바로, 곤이였기 때문이다.





29.

정말로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힘을 내게 다 써 버렸던 걸까. 내가 다녀간 날 아줌마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며칠 후에 숨을 거두었다. 아줌마의 죽음을 알리는 윤 교수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그렇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나같이 뭔가가 고장 난 사람이나 죽기 전에 이미 그 사람을 마음에서 떠나 보낸 사람들만이 그럴 수 있다. 아저씨는 후자였다.

내가 왜 장례식에 갔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어쩌면 아줌마가 나를 너무 꽉 안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줌마의 장례식은 내가 알던 할멈의 장례식 풍경과는 몹시 달랐다. 합동 장례식으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그때 할멈의 영정 앞엔 나뿐이었다. 한데 아줌마의 장례식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친목회를 연상시켰다. 사람들은 모두 말끔했고 잘 차려입었다. 모두들 ‘교양’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직업과 말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서 교수, 닥터, 이사, 대표 따위의 단어가 자주 들렸다.

영정 사진 속의 아줌마는 딴사람 같았다. 입술은 붉고 머리숱이 많고 볼에 살이 통통하고 눈빛은 촛불을 켠 듯 밝다. 그런데 아줌마 얼굴이 너무 젊다. 기껏해야 삼십 대 초반의 사진을 영정으로 쓴 이유는 뭘까. 아저씨가 내 의문을 눈치챈 듯 말했다.

—그 애를 잃어버리기 전의 사진이란다. 그 뒤로는,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한 장도 찾을 수 없더구나. 아내도 저 사진을 원했다.

향을 피우고 절을 했다. 죽기 전에 아줌마는 그렇게 바라던 소망을 이뤘다. 아들을 만나는 것. 적어도 그렇게 알고 갔다. 진실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조금 더 불행했을까.

그것으로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발걸음을 돌리는데 갑자기 공기가 서늘해졌다. 그 공기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엄청난 힘을 가진 침묵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혹은 벌린 상태로 말을 멈췄다. 그들의 시선은 약속이나 한 듯 한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그 애가 있었다.





30.

키가 작고 깡마른 아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서 있다. 팔과 다리는 작은 몸집에 비해 무척 길었다. 단단한 몸이다. 만화 「내일의 조」에 나오는 조와 흡사한 체격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운동을 해서 만들어진 몸과는 달랐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제3세계 아이들의 몸 같았다. 종일 쓰레기장을 뒤지거나 관광객을 따라다니며 달러를 구걸하는 아이들처럼 생존을 위한 움직임으로 다져진 몸. 까무잡잡한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짙은 눈썹 아래로 바둑알처럼 새까맣게 반질거리는 눈동자가 모두를 쏘아보고 있었다. 사람들을 침묵하게 한 건 그 눈빛이었다. 해칠 생각이 없는 사람 앞에서 먼저 이를 드러내고 제 새끼를 죽여 버리는 맹수 같았다.

그 애가 바닥에다 침을 퉤, 뱉었다. 침을 뱉는 게 그 애의 공식적인 인사법인 것 같았다. 얼마 전 그 애를 처음 봤던 날도 그 애는 똑같이 행동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례식장에서의 대면은 곤이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며칠 전 전학생이 왔다. 교실 문을 연 담임 뒤로 체구가 작은 아이가 하나 들어왔다. 그 애가 곤이다. 팔짱을 낀 채 짝다리로 섰다는 건 낯선 아이들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는 뜻일 거다. 담임은 자기가 전학 온 양 쭈뼛거리더니 곤이더러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그러자 곤이는 슬쩍 반대편 다리로 무게를 옮기더니

—그냥 선생님이 해 주시죠.

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다. 환호 섞인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담임은 붉어진 얼굴에 손바람을 일으켰다.

—윤이수다. 이제 반 애들한테 인사해야지.

그 말에 곤이는 아, 뭐……, 하며 우두둑 목을 꺾더니 혀로 볼 안쪽을 번갈아 불룩하게 찔렀다. 그러곤 씩 웃음을 짓고 나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됐죠?

곳곳에서 함성이 길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거친 말들도 간간이 섞인 게 조금 전과는 달랐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담임이 주의를 주거나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담임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꾹 눌러 삼킨 말이 얼굴로 올라와 붉은 기운을 더했을 뿐이다. 곤이는 소개를 마치고 한 시간 후에 조퇴를 했다.

곧 신상 털기가 시작됐다. 삼십 분도 안 돼서 곤이가 어디서 뭘 하다 온 앤지 반 전체가 알게 됐다. 한 아이가 사촌에게 들은 정보를 몇 가지 흘렸다.

그 사촌은 곤이가 소년원을 나와서 여기로 전학 오기 전에 갔던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애가 사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스피커폰으로 생중계됐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단합하여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잘 들으려고 책상 위로 올라간 아이도 있었다. 나는 멀리 있었지만 이 말만큼은 또렷이 들려왔다.

—그 새끼 완전 깡패야. 살인 빼곤 다 해 봤을걸.

누군가가 내게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야, 병신. 어쩌냐. 이제 네 시대는 갔다.

다음 날 곤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이들은 일제히 조용해졌다. 곤이는 말없이 자리로 향했다. 아이들은 슬슬 눈길을 거두거나 괜히 책에 고개를 묻는 척했다. 얌전히 앉는가 싶던 곤이가 냅다 책가방을 던졌다.

—누구냐?

어제의 소란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내 신상 턴 새끼 누구냐고. 알아서 일어나는 게 좋을 거다.

공기가 조용히 진동했다. 최초의 정보 제공자가 몸을 떨며 일어났다.

—아, 아니……. 내 사촌이 널 안다고 해서…….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곤이는 또 혀로 볼 안쪽을 몇 차례 찌르더니 입을 열었다.

—고맙다. 네 덕분에 소개할 필요 없어졌네. 나 그런 애다.

곤이가 자리에 풀썩 앉았다.



아줌마의 부고를 전해 들은 날, 곤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가족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곤이가 그 애라는 걸. 나를 아들로 착각하고 죽어 버린 아줌마의 진짜 아들이라는 걸.





31.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곤이가 제 엄마의 영정 앞에 절을 했다.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윤 교수의 인도에 따라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까지 순식간에 끝냈다. 모든 동작이 너무 빨랐고 절은 한 번만 하고는 벌떡 일어서서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윤 교수는 한 번 더 하는 거라고 곤이의 등을 밀었다. 하지만 그 애는 몸으로 그 손길을 밀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밥을 먹고 가라는 윤 교수의 권유로 나는 상 앞에 앉았다. 명절 때 엄마가 하던 음식과 종류가 비슷했다. 뜨거운 국과 전, 꿀이 든 떡이며 과일들. 나도 몰랐는데 배가 고팠는지 밥이 빨리 넘어갔다.

사람들은 남 얘기를 할 때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자주 잊어버린다. 말하는 사람은 작게 말한다고 생각해도, 그 말들은 대부분 여과 없이 다른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밥을 먹는 내내 곤이에 대한 얘기가 공중에 떠다녔다. 장례 이틀째가 돼서야 나타난 이유는 그 애가 오기를 거부해서였다는 둥,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사고를 쳤다는 둥, 전학을 시키는 데 돈이 얼마가 들었다는 둥, 아들 역할을 한 아이가 따로 있다는 둥, 여러 말들이 어지럽게 오갔다. 나는 구석에서 사람들을 등지고 앉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잘은 몰랐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밤이 되고 조문객이 어느 정도 빠질 때쯤 곤이가 다시 나타났다. 곤이의 눈이 지목하듯 내게 꽂혔고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 애는 내 앞으로 와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육개장을 두 그릇이나 후루룩 비운 곤이는, 마침내 얼굴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너였냐. 나 대신 아들 노릇 한 새끼가.

답할 필요가 없었다. 이어진 말도 곤이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이제 골치 아플 줄 알아라. 뭐, 재미있을지도 모르고.

곤이가 씩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진정한 시작이, 시작됐다.





32.

곤이 곁에 두 아이가 따라다녔다. 말라깽이 같은 한 명은 곤이의 말을 다른 아이들에게 전하는 비서 노릇을 맡았고, 덩치가 좋은 다른 한 명은 한눈에도 세를 과시하는 역할이었다. 셋은 그렇게 친해 보이진 않았다. 친구라기보다는 모종의 계약이나 목적으로 뭉친 것 같았다.

어쨌든 곤이는 나를 괴롭히는 걸 새로운 취미로 삼은 듯했다. 상자를 열면 튀어나오는 인형처럼 불쑥불쑥 내 앞에 나타나곤 했다. 매점 앞에 잠복해 있다가 나를 한 대 치기도 했고 복도 끝에 서 있다가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그런 자잘한 계획이 성공할 때마다 곤이는 대단한 선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커다랗게 웃었고, 양옆에 서 있던 아이들도 곤이의 눈치를 보며 장단을 맞추듯 따라 웃었다.

나는 시종일관 대응하지 않았다. 곤이를 두려워하고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아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선생님에게 말하진 않았다. 후환을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계산이 한몫했겠지만, 내 반응도 딱히 도움을 요청하는 느낌이 아니어서였을 거다. 둘 다 이상한 놈들이니 구경이나 하자는 게 주된 여론이었다.

곤이가 내게서 어떤 반응을 원하는지는 뻔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괴롭힘당하는 아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 상대방이 울면서 제발 그만두라고 빌기를 바라는 아이들. 그 애들은 대부분 힘을 써서 자기들이 원하는 걸 얻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곤이가 원하는 게 내게서 어떤 자그마한 표정의 변화라도 보는 것이라면 그 애는 영원히 나를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럴수록 힘이 부치는 사람은 곤이 자신이라는 것도.



얼마 가지 않아 곤이는 타깃이 심상찮은 상대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나를 건드리는 행동은 계속됐지만 전처럼 당당한 기색이 아니었다. ‘쫀 거 아니야? 완전 초조해 보여.’ 아이들이 곤이 몰래 속삭였다.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교실 안의 공기는 팽팽해져 갔다.

얼마 뒤, 제풀에 지쳤는지 곤이는 나를 넘어뜨리거나 뒤에서 머리를 치고 가는 대신, 공식적인 결판을 ‘선언’했다. 담임이 종례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말라깽이가 칠판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뭐라고 쓰기 시작했다. 칠판에 삐뚤빼뚤한 글자가 적혔다.



내일 점심 급식 후. 소각장 앞.



곤이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하게 울렸다.

—분명히 예고했다. 그러니까 선택은 네가 해라. 맞기 싫으면 피해. 네가 안 나오면 겁나서 튄 걸로 치고 더 이상 귀찮게 안 할 테니까. 그 대신 나온다면 각오 좀 하고.

대꾸하지 않고 가방을 둘러메고 일어섰다. 곤이가 내 등에 책을 던졌다.

—알아듣긴 했냐, 병신아? 맞기 싫으면 피하라고.

곤이가 씩씩댔다. 분을 참지 못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내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왜 널 피해야 되는데? 난 다니던 데로 다닐 거야. 거기 네가 없다면 볼 일이 없을 테고, 있다면 만나게 되겠지.

등에 꽂히는 욕설을 뒤로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곤이가 성가신 짓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33.

전교생이 곤이와 나의 대결을 알고 있었다. 아침부터 교정이 시끌시끌했고 가끔씩 아이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이 점심시간에 있을 일을 암시했다. 누군가 “아, 시간 열라 안 가네.” 하고 외쳤고 누군가는 “설마 선윤재가 진짜 그리로 가겠냐?”라고 말했다. 누가 이길지를 놓고 내기를 거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수업에 임했다. 내가 느끼기에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평소처럼 흘렀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급식실에서 아무도 내 옆에 앉지 않았다. 거기까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멀리서 몇몇 아이들이 나를 따라 일어서는 게 보였다. 내가 움직이자 아이들의 무리가 점점 커졌다. 입구를 빠져나왔다. 교실로 가려면 소각장을 지나는 게 지름길이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곤이가 서 있었다. 똘마니들은 보이지 않았고 그 애 혼자였다. 곤이는 나무둥치를 발로 툭툭 건드리다가 나를 보고는 동작을 멈췄다. 먼 거리인데도 그 애가 두 주먹을 말아 쥐는 게 보였다. 나와 곤이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내 뒤를 따르던 아이들이 불필요한 먼지처럼 하나둘 흩어졌다.

곤이가 짓고 있는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 화가 났다고 보기엔 입술을 꽉 물고 있었고, 슬프다고 하기엔 눈꼬리가 너무 위로 뻗어 있었다. 이 표정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쫄았다 쫄았어. 존나 당황했나 봐, 윤이수 새끼.

누군가가 외쳤다.

이제 곤이와 나의 간격은 몇 발짝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일정한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밥을 먹고 나면 늘 졸렸기 때문에 얼른 교실로 돌아가 엎드려서 잠을 좀 청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곤이는 의미 없는 풍경처럼 나를 스쳐 지나갔다. 오, 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러자마자 뒤통수가 가볍게 울렸다. 팔이 헛나갔는지 살짝 스쳤을 뿐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발길질에 몸이 휘청 앞으로 기울었다.

—분명히, 피하라고, 했잖아, 씨발, 이건, 네가, 선택한, 거라고.

한 단어에 한 대씩 규칙적인 발길질이 몸을 울렸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강도도 점점 세졌다. 나는 어느새 쓰러져 있었고 입에선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뺨 안쪽에 피가 고였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 애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너란 놈은 대체 뭐야, 이 병신 새끼야!

곤이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지켜보기만 하던 아이들도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러다 큰일 나겠어. 야, 누가 담임이라도 불러! 웅성거림 속에서 몇 개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리자 곤이는 군중에게 얼굴을 돌렸다.

—누구냐? 뒤에서 지껄이지 말고 나와 봐, 이 개새끼들아. 어?

곤이는 땅에 흩어진 물건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 들어 아이들을 향해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빈 캔이나 나무토막, 유리병 따위가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그 모습이 낯익었다. 할멈. 엄마. 그 일이 일어날 때 거리의 사람들은 지금과 비슷했다. 이제는 막아야 했다. 입 안이 피로 흥건했다. 그래서 침을 한 번 모아 뱉은 뒤 말했다.

—그만둬. 네가 원하는 걸 나는 해 줄 수가 없어.

—뭐라고?

곤이가 씩씩거렸다.

—네가 원하는 걸 하려면 나는 연기를 해야 해. 그건 나한테 너무 어려운 거야. 불가능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겉으론 무서운 척해도 속으론 다들 널 비웃고 있을 테니까.

곤이가 주변을 돌아봤다. 순간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곤이의 등이 적개심을 품은 고양이처럼 위로 솟았다.

—썅, 다들 죽어 버려!

그러더니 곤이는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같이 욕이었다. 저주, 욕, 그것만으론 표현할 수 없는 광기.





34.

곤이의 본명은 이수다. 그건 그 애의 엄마가 지어 준 이름이다. 하지만 곤이는 이수라고 불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수라는 이름은 나약해 보여서 싫다고 했다. 자신이 가졌던 여러 이름 중에서 그 애는 곤이라는 이름을 가장 좋아했다.

곤이의 첫 기억은 낯선 곳에서 여러 사람이 이상한 언어로 떠드는 거다. 어린 곤이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북적북적 소란스럽기만 하다. 그 애는 대림동 쪽방촌에서 중국인 노부부와 함께 살았는데, 그들은 곤이를 쩌양이라고 불렀다. 몇 년간 그 애는 집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 초반에 곤이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검문을 나오면서 노부부는 자취를 감췄고 곤이는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다 아동 보호 시설로 갔다. 다들 그 애를 노부부의 친손자로 생각한 데다 그들이 중국으로 돌아갔다는 공식적인 기록도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도 조사가 이뤄지거나 친부모를 찾는 데 실패했다.

한동안 보호 시설에서 지내던 곤이는 아이가 없는 어떤 집으로 입양이 됐다. 거기서는 곤이를 동구라고 불렀다.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밑으로 아기가 태어나면서 그들은 이 년 만에 곤이를 파양했다. 그 뒤로 곤이는 다시 시설에서 살다 이런저런 사고를 쳐서 소년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곤이라는 이름은 희망원이라는 시설에서 스스로 지은 이름이었다.

—한자도 있어?

—아니, 난 그런 복잡한 거 몰라. 그냥 떠올랐어.

그러면서 씩 웃는다. 곤이는 그런 애였다. 나도 곤이라는 이름이 쩌양이니 동구니 이수 같은 이름보다 훨씬 ‘곤이답다’고 생각했다.



소각장에서 있었던 일로 곤이는 일주일간 정학을 받았다. 그날 누군가의 제보로 제때 선생님이 오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윤 교수가 학교로 불려 왔고 내 공식 보호자인 심 박사와 마주했다. 심 박사는 낮은 목소리로 강하게 화를 냈고 초반에 윤 교수가 내게 직접 찾아가 보게끔 한 것을 몹시 후회했다. 윤 교수는 정학이 끝난 뒤에도 곤이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전학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학교의 경고에 고개를 푹 숙였다.



며칠 뒤, 나와 곤이는 피자집에 마주 앉아 있었다. 곤이의 눈빛은 더 이상 이글거리지 않았다. 옆에 윤 교수가 앉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곤이의 말썽을 전해 들은 윤 교수는 곤이에게 처음으로 매질을 했다고 한다. 윤 교수는 신사였기 때문에 고작해야 움켜쥔 컵을 벽에 내던지고 회초리를 들어 종아리를 몇 차례 때린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건 평소 그가 지켜오던 ‘지식인’이라는 자기 이미지에 오점으로 남았고, 원체도 어색했던 부자 관계는 더 멀어졌다.

십몇 년 만에 만난 진짜 아빠에게 매를 맞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서로를 더 잘 알거나 친해지기도 전에 말이다.

심 박사의 말에 따르면 윤 교수는 투박한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평생 지켜 온 윤 교수는, 갑작스레 돌아온 자신의 피붙이가 그런 신조에 철저히 위배되는 짓을 일삼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곤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도,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이 ‘이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그래서 윤 교수는 곤이에겐 매질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겐 사과하고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방법을 택했다. 선생님들에게 사과했고 학생들 앞에서 사과했고, 그리고 내게 사과했다.

곤이와 나를 피자 가게에 마주 앉혀 놓고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켜 준 것도 사과의 한 방식이었다. 윤 교수는 두 손을 양 무릎에 얹고는 곤이가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몇 번이고 같은 말을 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눈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런 일을 당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다 내 탓이다…….

나는 빨대로 콜라를 조금씩 빨아올렸다. 그의 말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말이 계속될수록 곤이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배가 꼬르륵거리고 눈앞의 피자가 딱딱해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전 아저씨한테 사과 들으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게 아니니까요. 사과는 얘가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러려면 저희 둘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윤 교수가 놀란 듯 눈을 잠깐 크게 떴다. 곤이도 눈을 치켜떴다.

—괜찮겠니?

—네. 혹시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연락드릴게요.

곤이가 피식, 코웃음 쳤다. 윤 교수는 몇 차례 헛기침을 하며 굼뜨게 몸을 일으켰다.

—윤재야, 이수도 많이 미안해하고 있을 거다.

—얘도 입이 있어요, 아저씨.

—그래. 맛있게 먹어라.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그럴게요.

그는 떠나기 전 곤이의 어깨에 무겁게 손을 올려놓았다. 곤이는 반항하지 않았지만 윤 교수가 걸음을 떼자마자 어깻죽지를 손으로 탁탁 털어 냈다.





35.

부글부글 콜라가 끓어올랐다. 곤이는 연신 빨대로 콜라에 숨을 불어넣었다. 시선은 창가로 돌려져 있었다. 창밖엔 간간이 지나다니는 차들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풍경이랄 것도 없었다. 창틀 바로 앞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후추 통이 놓여 있었다. 완만한 곡선으로 빚어진 후추 통은 광각 렌즈처럼 주변을 비추었다. 그 한가운데 내 얼굴이 보였다. 피딱지가 군데군데 앉고 멍이 든 게 꼭 경기에서 진 복서 같았다. 곤이는 후추 통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눈이 후추 통에서 만났다.

—꼴좋구나.

—덕분에.

—내가 너한테 사과라도 할 것 같냐.

—그러건 말건 상관없다.

—그럼 왜 둘이 있자고 한 건데.

—네 아빠가 너무 말을 많이 하셔서. 좀 조용히 있고 싶었다.

내 말에 곤이가 가벼운 콧소리를 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기침으로 덮으려는 듯한 소리였다.

—아빠한테 맞았다면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나는 대로 운을 뗐다. 적절한 시작은 아니었는지 곤이의 동공이 확 커졌다.

—누가 그래?

—네 아빠가 직접 얘기해 주시더라.

—입 닥쳐, 새끼야. 난 아빠 같은 거 가진 적 없어.

—그런다고 아빠가 아빠 아닌 게 되진 않을 텐데.

—뒈지고 싶냐. 입 닫으라고, 새꺄.

곤이가 후추 통을 낚아챘다.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 손톱이 하얘졌다.

—왜? 여기서 또 난장판이라도 벌이려고?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있냐?

—아니, 궁금해서 물어봤어. 미리 알면 나도 준비할 수 있으니까.

곤이가 포기한 듯 제 앞에 놓인 콜라를 끌어당겼다. 콜라가 다시 끓어올랐다. 나도 곤이를 따라 콜라에 숨을 불어넣었다. 곤이가 피자를 한 조각 베어 물고는 네 번 우물우물 씹고 삼켰다. 그러곤 작게 캭, 소리를 냈다. 나도 그 애가 하는 그대로 따라 했다. 네 번 우적우적 씹어 삼킨다. 그러곤, 캭.

곤이가 나를 쏘아봤다. 이제야 내가 자기를 따라 하는 걸 눈치챘다.

—미친 새끼.

곤이가 중얼거렸고,

—미친 새끼.

내가 똑같이 따라 했다. 그러자 곤이는 입술을 이쪽저쪽으로 씰룩였고, 내가 자신을 따라 입을 씰룩이는 것을 보았다. 그 애는 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피자, 똥, 변기, 제발 죽어라 따위의 말을 웅얼대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앵무새나 광대가 된 것처럼 똑같이 따라 했다. 곤이가 쉬는 들숨과 날숨의 횟수까지도 똑같이.

묘한 거울놀이가 계속되자 곤이는 차츰 피로해진 모양이었다. 웃음소리는 멈췄고 곤이는 더 곤란한 표정이나 동작을 생각하는 듯 시간을 끌었다. 그러건 말건 나는 그 애가 입술 사이로 작게 프프프, 소리를 내거나 눈썹을 미세하게 찡그리는 것조차 따라 했다. 나의 끈질긴 행동은 곤이의 ‘창의적인’ 생각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그만하자.

하지만 난 그만두지 않았다.

—그만하자.

라고 똑같이 말했을 뿐이다.

—그만하자고, 새꺄.

—그만하자고, 새꺄.

—우습냐, 병신아?

—우습냐, 병신아?

곤이는 말을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치기 시작했다. 내가 따라 하자 얼른 동작을 멈춘다. 침묵. 말없이 나를 노려본다. 십 초, 이십 초, 일 분쯤. 그러더니 잠깐 자세를 고쳤고, 나도 그렇게 했다.

—내가 말이야.

—내가 말이야.

—여기서 테이블을 엎고 접시를 다 깨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을까?

—여기서 테이블을 엎고 접시를 다 깨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을까?

—그 깨진 접시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찔러 죽여도 네가 똑같이 할 수 있겠냐고, 개자식아.

—그 깨진 접시로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찔러 죽여도 네가 똑같이 할 수 있겠냐고, 개자식아.

—좋아.

—좋아.

—똑똑히 알아 둬. 이건 네가 시작한 거야.

—똑똑히 알아 둬. 이건 네가 시작한 거야.

—여기서 관두면, 넌 좆도 아닌 거야, 알았어?

—여기서 관두면, 넌 좆도…….

내 말이 끝나기도 전 곤이가 테이블 위의 음식을 팔로 다 쓸어 버렸다. 그러더니 테이블을 쾅쾅 내리치며 사람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뭘 봐, 미친 것들아. 맛있냐? 맛있냐고! 병신들아, 실컷 처먹어라!

곤이는 앞에 놓인 피자며 소스 병들을 사방으로 집어 던졌다. 건너편에 앉은 여자의 발치에 피자가 떨어졌고 아무렇게나 뿌려 댄 소스가 어린아이의 머리 위로 튀었다.

—왜 안 따라 해, 병신아, 왜 안 따라 해?

곤이가 나를 보며 씩씩댔다.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근데 왜 안 따라 하냐고!

종업원이 달려와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따위의 말을 했지만 곤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곤이는 당장이라도 직원을 때릴 것처럼 팔을 들어 올렸다. 손님 몇이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고 다른 직원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따라 해 보라고, 새끼야.

곤이가 다시 외쳤지만, 이미 나는 가게 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약속한 대로 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도 전에 윤 교수가 나타났다. 행여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근처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나 보다. 그가 피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창문을 통해 난장판이 된 가게 안을 바라봤다. 윤 교수의 뒷모습이 떨리는 것을, 그의 커다란 손이 곤이의 얼굴을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는 것을. 그리고 곤이의 머리가 그의 두 손에 잡혀 앞뒤로 흔들리는 광경을. 거기까지 보고 발길을 돌렸다. 별로 재미없는 장면이었다.



피자를 거의 먹지 못했기 때문에 허기가 졌다.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서 우동을 한 그릇 사 먹고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소변 줄이 통에서 비어져 나와 침대 밑에서 대롱거렸다. 노란 오줌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간호사를 불러 조치를 취해 달라고 얘기했다. 엄마의 얼굴에 기름이 꼈다. 거울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거다. 스킨을 솜에 묻혀 얼굴을 닦고 로션을 톡톡 발라 주었다.

병원 문을 나서 집까지 걸어왔다. 아주 조용한 저녁이었다. 책을 한 권 빼 들었다. 학교를 나온 소년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평범한 내용이다. 그 애는 호밀밭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그 애가 파란색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를 타는 동생 피비를 지켜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 난데없는 결론이 왠지 맘에 들어 벌써 몇 번이나 읽은 책이었다.

이따금 곤이의 얼굴이 책 위로 겹쳤다. 아빠에게 머리채를 잡힌 그 애의 얼굴이. 하지만 그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짐작되지 않았다.

잠들기 직전 윤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자꾸만 말을 멈췄고 침묵과 한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윤 교수가 전달한 건, 치료비를 모두 대겠다는 것과 더는 곤이가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거였다.





36.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형수 출신의 미국 작가 P. J. 놀란이 한 말이다. P. J. 놀란은 자신의 의붓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수감 생활 동안 자전적 에세이를 썼다. 훗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P. J. 놀란은 그 사실을 영영 알 수 없었다. 사형은 예정대로 집행됐다.

죽고 난 뒤 십칠 년이 지난 후에 진범이 자백을 하면서 P. J. 놀란의 결백이 드러났다. 딸에게 몹쓸 짓을 한 건 옆집에 살던 이웃이었다.

P. J. 놀란의 죽음은 여러 면에서 논란이 되었다. 딸에 대해서만은 결백했지만 그에게는 이미 폭력, 절도, 살인 미수 등의 무거운 전과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시한폭탄이라 불렀다. 무죄 선고를 받았더라도 언젠간 끔찍한 일을 터뜨렸을 거라고 말이다. 어쨌든 세상이 이미 죽어 버린 남자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동안 P. J. 놀란의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책의 대부분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분노로 가득 찬 젊은 시절을 적나라하게 그려 내고 있다. 사람에게 칼을 찔러 넣거나 강간을 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어떤 방식이었는지가 너무 상세하게 적혀 있어 일부 주에서는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는 마치 음식을 분류해 냉장고에 넣거나 서류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봉투에 넣는 방법을 설명하듯 그런 과정을 담담히 묘사했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는 무슨 의미로 그렇게 썼을까. 도와 달라는 손짓이었을까, 아니면 깊은 원망이었을까.

엄마와 할멈에게 칼을 휘두른 남자와 곤이는 P. J. 놀란 같은 타입이었을까. 아니면 P. J. 놀란과 가까운 건 오히려 나였을까.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겐 곤이가 필요했다.





37.

심 박사는 다른 사람이라면 펄쩍 뛸 말에도 언제나 침착했다. 곤이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을 때도 그랬다. 내가 나에 대한 얘기를 길게 설명한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작게 타고난 편도체, 각성 수준이 낮은 대뇌 피질, 엄마에게 받은 교육에 대해서. 심 박사는 얘기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곤이가 널 때릴 때 두렵진 않았겠구나. 하지만 그게 용감하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 분명히 말해 두지만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다. 그건 내 책임이기도 하니까. 결론적으로, 넌 일단 피했어야 한다.

인정했다. 엄마한테 내내 배운 게 그거였다. 그러나 감독이 없으면 선수는 해이해진다. 내 뇌도 생긴 대로 놀았을 뿐이다.

—물론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건 환영할 일이지. 개인적으로 네 호기심의 대상이 그 애라는 게 그렇게 반갑진 않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곤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하겠죠?

—아마도. 엄마라면 그러셨을 거다, 틀림없이.

—그 애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나쁜 건가요?

—그 애와 친해지고 싶다는 뜻이니?

—친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예를 들어, 이렇게 너와 내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특별히 돈이 오가지 않는데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이런 게 친한 거란다.

—몰랐어요, 제가 아저씨랑 친한 줄.

—하하, 아니라고 하진 마라. 아무튼 진부한 표현이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단다. 그 애가 너와 그런 관계가 될지는 시간이 알려 줄 거야.

—아저씨가 말리지 않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난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는 걸 경계한단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네 나이 때는 더 그렇고.



심 박사는 원래 대학 병원의 심장외과 의사였다. 집도도 많이 했고 환자들의 예후도 좋았다. 그런데 그가 남들의 심장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아내의 가슴속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는 말이 없어졌고 그는 여전히 그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어느 날 그들은 마침내 그토록 미뤄 오던 여행을 떠났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깊은 섬의 휴양지였다. 박사는 투명한 포도주를 마시며 석양을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돌아가서 할 일들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해가 바다로 가라앉기 직전 박사는 잠이 들었다. 얼마 후 그는 헐떡이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내가 눈을 크게 뜬 채 가슴을 움켜잡고 있었다. 아내의 심장 속 전기 신호가 오류를 일으켰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맥박이 분당 500회를 뛰었다.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났고 박사가 할 수 있는 건 울면서 아내의 손을 붙잡고 괜찮을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말해 주는 것 외엔 없었다.

미쳐 날뛰던 아내의 심장이 갑자기 멎었다. 전기 충격기도 없었고 코드 블루를 외쳐 봐야 뛰어올 사람도 없었다. 박사는 아마추어처럼 가망 없는 가슴에다 미친 듯이 펌프질을 했다. 한 시간이나 지나서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아내의 몸은 이미 차갑고 딱딱했다. 그렇게 아내는 그를 영원히 떠났고 그 뒤로 박사는 메스를 놓았다.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러면서도 왜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는지만 돌이켰다. 다시는 누군가의 살을 갈라내 그 안에서 뛰는 심장을 볼 자신이 없었다.

둘 사이엔 아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혼자였다. 아내를 생각하면 고소한 빵 냄새가 떠올랐다. 아내는 늘 그를 위해 직접 빵을 구웠고 그 맛은 무언가 그리운 걸 떠올리게 했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나 설명하기 힘든 사소한 기억의 한 장면 같은 것을. 바쁜 아침에도 식탁엔 언제나 고소하고 따끈한 빵이 놓여 있었다. 박사는 빵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가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이미 빵을 먹을 아내가 사라진 마당에 그게 무슨 의미일까.

나는 몰랐지만 박사와 엄마는 많은 얘길 나눴다. 세입자로 시작해 단골손님이 된 엄마는 박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했다. 누구에게도 내 얘기를 털어놓지 않은 엄마가 그에게 가장 자주 얘기한 건, 혹시 자신이 어떻게 되면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엄마는 늘 나의 상태를 비밀로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나와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엄마는 내가 모르는 엄마였다. 엄마에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38.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몸집이 작은 남자아이가 옷깃을 세운 채 쭈뼛거리며 책장 뒤로 사라졌다. 얼핏 머리통에 난 별 모양 땜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후, 카운터 위로 성인 잡지 한 권이 턱 던져졌다. 사자처럼 굽실굽실한 금발 머리를 지닌 여자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가죽 재킷으로 간신히 여민 채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다. 입을 살짝 벌리고 등을 한껏 뒤로 젖힌 채로.

—존나 식상하네. 골동품 모은다 생각하고 한 권 사 준다. 얼만데?

곤이였다.

—이만 원. 말 그대로 골동품이라 싸진 않아.

곤이는 툴툴거리며 주머닐 뒤지더니 지폐와 동전을 섞어 던지듯 떨어뜨렸다.

—너.

그러더니 카운터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나를 빤히 올려봤다.

—로봇이라며? 아무것도 못 느낀다며, 너?

—완전히 그런 건 아냐.

곤이가 코를 두어 번 킁킁댔다.

—너에 대해서 조사를 좀 했지. 정확히 말하자면 네 망할 머리통에 대해서.

곤이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쳤다. 잘 익은 수박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어쩐지, 좀 이상하다 싶었거든. 난 뭐, 쓸데없이 힘만 쓴 거더라고.

—네가 찾아오면 너희 아빠가 전화 달라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어.

곤이의 눈에 순간적으로 불길이 일었다.

—전화드려야겠다. 약속했으니까.

수화기를 들었지만 귀에 가져가기도 전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못 알아듣냐, 새꺄. 하지 말라고. 안 건드릴 테니까.

곤이는 가게 안을 한 바퀴 돌며 괜히 책을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멀찌감치 서서 소리쳤다.

—맞을 때 아팠냐?

—아팠지.

—로봇이라더니, 완전히 깡통도 아니네 뭐.

—음…….

입을 열다 말았다. 내 상태에 대한 설명은 언제나 어려웠다. 특히 부연을 도와줄 엄마가 사라진 후엔 더더욱.

—예를 들어, 춥다거나 덥다거나 배고프다거나 아픈 거. 그런 건 나도 느껴. 안 그러면 살아 있을 수가 없겠지.

—그게 다야?

—간지러운 것도 느껴.

—간지럽히면 웃기도 하고?

—아마 그럴걸. 그런 장난을 당한 게 너무 오래전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내 말에 곤이가 바람 빠지는 소릴 냈다. 어느새 카운터 앞에 와 있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곤이는 눈길을 딴 데다 돌렸다.

—너네 할머니 죽었다며. 진짜냐.

—응.

—엄만 식물인간이라며.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네 눈앞에서 그렇게 됐다며? 어떤 미친놈한테 칼 맞아서.

—그래.

—근데 넌 그냥 보고만 있었다며.

—결과적으로는 그런 셈이지.

곤이가 홱 고갤 들었다. 눈빛이 일렁였다.

—존나 병신 같은 새끼네. 할머니랑 엄마가 눈앞에서 죽어 가는데 보고만 있냐. 그런 새끼는 그 자리에서 잡아 족쳤어야지.

—그럴 틈도 없었어. 그 사람도 바로 죽어 버렸거든.

—알아. 근데, 그놈이 살아 있었어도 넌 아무것도 못 했을 거야. 넌 아무것도 막지 못했을 거라고, 겁쟁이 새끼야.

—그럴지도 모르지.

내 대응에 곤이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런 얘기 해도 기분 나쁘지도 않냐. 어떻게 표정에 변화가 없어. 생각 안 나? 네 할머니랑 엄마 생각 안 나냐고.

—생각나. 많이. 자주.

—근데 잠은 잘 와? 학교는 어떻게 다녀? 망할, 가족이 네 앞에서 피 흘리면서 죽었는데.

—그냥. 살게 돼. 나보다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도 얼마 안 돼 먹고 자고 다 할걸. 사람은 살게 돼 있는 존재니까.

—잘난 척 되게 하시네. 나 같음 매일 밤 열받고 억울해서 잠도 못 자겠다. 사실 이 얘기 듣고도 며칠 잠 못 잤는데. 나였음 그 새끼 내 손으로 죽였어.

—미안하다. 나 때문에 잠까지 못 자고.

—미안? 할머니 죽었을 때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다면서, 나한테 미안하단 말은 할 줄 아냐? 겁나 매정한 새끼네.

—듣고 보니 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미안하단 말은 교육받은 거라 적절히 할 줄 알아.

곤이가 혀를 찼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너란 놈.

—다들 말은 안 해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럴 거라고 엄마가 얘기해 줬었어.

—병신…….

거기까지 말하고 곤이는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그동안 머릿속엔 곤이와 나눈 대화가 다시금 떠올랐다. 이번엔 내가 운을 뗐다.

—근데 넌, 쓰는 단어가 진짜 몇 안 되나 보다.

—뭐?

—욕이 대부분이긴 한데, 하는 욕도 거기서 거기고. 어휘량이 너무 한정된 거 같은데 책을 좀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거야. 그럼 사람들이랑 더 많은 얘길 할 수도 있을 거고.

—로봇 주제에 조언질이냐.

곤이가 하, 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잘 볼게. 심심하면 또 올 수도 있고.

그 애는 자기가 고른 책을 흔들며 문밖으로 나섰다. 그 바람에 오토바이에 앉은 여자의 가슴에 물결이 쳤다. 문이 닫히기 전, 곤이는 몸을 돌렸다.

—아 그리고, 아빠라는 작자한테 전화할 필요 없다. 지금 집으로 가니까.

—그래, 거짓말 아니었으면 좋겠다. 네가 거짓말해도 난 눈치를 잘 못 챌 거거든.

—존나 선생님 나셨네. 그런다면 그런 줄 알아라.

탁 소리가 나게 문이 닫혔다. 한 줄기 바람이 가게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옅은 여름 향이 묻어 있는 바람이었다.





39.

윤 교수가 업소에 적절한 보상을 해서였는지, 피자집에서의 일은 학교로 따로 신고가 들어오진 않은 듯했다. 그 일은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그리고 얼마간 뭔가가 터질 것 같은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이제 별다른 사건이 없을 거라는 걸 모두가 알아챘다. 곤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와도 눈길을 마주치지 않았다. 곤이를 따르던 두 아이도 이제 다른 무리에 섞여 곤이 곁에 얼씬하지 않았다. 곤이는 알아서 구석진 곳에서 혼자 밥을 먹었고, 누군가를 노려보는 대신 엎드려 잤다. 그 애가 한때 문제를 일으켰던 별 볼 일 없는 아이로 치부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곤이가 화제에서 벗어나면서 나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더 이상하거나 흥미진진한 것들로 아이들의 관심은 늘 바뀌었으니까. 한 아이가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연일 그 애에 대해 떠들었다.

공식적으로, 그러니까 아이들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는 ‘적’이었다. 그동안 벌어진 일들만 보더라도 마땅히 그래야 했다. 그래서, 누가 그러자고 정한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 곤이와 나는 서로 모른 척했다. 말을 섞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우리는 칠판지우개나 분필처럼 그저 학교를 구성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거기서는 누구도 진짜가 아니었다.





40.

—씨바, 되게 예술적이네. 다 가려 놔서 볼 것도 없다.

전에 사 간 잡지를 카운터 위로 툭, 내려놓으며 곤이가 툴툴댔다. 말투와 행동은 비슷했지만 전보다 힘이 약해져 있었다. 책을 바닥에 던지지 않고 카운터에 올려놓은 것, 데시벨이 낮아진 목소리 따위. 반대로 어깨는 지난번보다 조금 더 펴져 있었다.

왠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곤이의 방문 내지는 습격을 자주 받았다. 거의 매일 저녁 녀석은 가게에 들렀다. 머무는 시간은 대중없었다. 의미 없는 말을 몇 마디 던지고 휙 나가는 때도 있었고 조용히 책을 구경하거나 캔 음료를 홀짝일 때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 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주 드나드는 건지도 몰랐다.

—맘에 안 들었다니 유감이다. 하지만 규정상 환불은 안 돼. 하자가 있는 책이면 몰라도. 이렇게 사 간 지 오래된 경우엔 더 그렇고.

곤이가 크게 흥, 소리를 냈다.

—누가 환불해 달랬냐. 집에 놔두기 뭐하니까 그냥 다시 가져온 거다. 빌려 본 값 낸 셈 치지, 뭐.

—나름 고전이다. 마니아도 있을걸.

—나 고전 읽은 거냐. 독서 목록에 포함시켜야겠네.

제 말이 우스웠는지 곤이가 피식, 하고 웃었다. 하지만 내가 따라 웃지 않자 금세 정색하며 표정을 지웠다. 그런 말에 되웃어 주는 건 내겐 힘든 일에 속한다. 억지로 한다고 하더라도 입꼬리를 올리는 게 전부다. 억지웃음인 게 너무 티가 나서 오히려 상대를 비웃는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는 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냉정하고 무미건조한 아이로 평가받은 것도 대부분 웃는 것 때문이었다.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웃는 게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엄마조차 매번 설명을 하다 지쳐 버릴 정도였으니까. 결국 엄마는 딴 방법을 생각했다. 딴짓을 하는 척한다든지 상대의 말을 못 들은 척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대부분 타이밍을 놓쳤고 한참의 침묵이 있은 뒤에야 간신히 할 말을 찾곤 했다. 지금 곤이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고전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1995년에 만들어진 거니까 잡지로 치면 할아버지지. 어렵게 구한 거야. 남들은 인정 안 할지도 모르는데, 진정한 고전이긴 해.

—그럼 다른 책도 한번 추천해 줘 봐라. 고전으로.

—‘그런’ 종류의 고전?

—그래. 네가 말한 ‘진정한’ 고전.

고전은 은밀한 곳에 놓는 법이다. 곤이를 구석의 서가로 안내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먼지 쌓인 서가의 귀퉁이에서 나는 그 책을 뽑아 들었다. 구한말에 찍힌 외설 사진들이었다. 양반과 기생이 껴안고 여러 가지 체위를 보인다. 과감하게 찍혀서 아주 노골적이다. 더러는 성기가 노출된 모습도 찍혀 있다. 흑백 사진인 데다 한복을 입고 있다는 게 요즘과 다를 뿐.

곤이는 구석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책을 건네받았다.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 애의 입이 떡 벌어졌다.

—대박. 우리 조상들한테 이렇게 대견한 구석이 있었냐.

—대견하다는 말은 너보다 어린 사람한테 쓰는 말이야. 진심인데, 너는 활자를 좀 더 읽어야 될 필요가 있겠다.

—지랄.

그렇게 말하면서 곤이는 페이지를 넘겼다. 한 장 한 장 유심히 보며 규칙적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몸이 근질거리는지 어깨를 으쓱하더니 가부좌한 다리도 좌우로 들썩였다.

—얼마냐.

—비싸, 아주. 특별판이거든. 복사본이긴 해도 소장 가치가 있지.

—이거 찾는 사람도 있냐.

—진정한 고전을 아는 사람들이 찾겠지. 얼마 없어서 진짜 수집가 아니면 안 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서 봐라.

곤이는 책을 탁 덮고는 주변의 책들을 뒤적였다. 『펜트하우스』 『허슬러』 『플레이보이』 『선데이 서울』. 귀하고 비싼 것들이었다.

—이런 건 누가 공수해 왔냐.

—엄마.

—엄마가 센스 있으시네.

말해 놓고 곤이는 덧붙였다.

—칭찬이다. 장사 수완이 있으시다고.





41.

그 말은 틀렸다. 엄마는 장사 수완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이었다. 나와 관계된 일들이 아니면 엄마는 오로지 낭만과 기분을 좇아 대부분의 일을 결정하는 사람이었고, 헌책방을 차린 것부터가 그 증거였다. 가게를 연 초반에 엄마는 어떤 책들로 책방을 꾸며야 할지 고민했다. 특별한 테마가 떠오르진 않았나 보다. 그저 다른 헌책방들처럼 여러 가지 기술 서적, 학술 서적이나 문제집, 어린이책, 문학책 따위로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도 돈이 조금 남자 엄마는 그 돈으로 헌책방 안에 작은 커피 머신을 들여놓겠다고 했다. 책과 향긋한 커피 향. 딱이었다, 엄마 생각엔.

—커피 머신은 얼어 죽을.

콧방귀 뀐 건 할멈이었다. 할멈은 짧은 말 몇 마디로 엄마를 발끈하게 하는 데 아주 소질이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고상한 취미가 조롱 섞인 언어로 재단된 것에 분노했다. 할멈은 눈도 깜짝 안 하고 나지막이 덧붙였다.

—야한 책이나 가져다 놔라.

엄마가 입을 떡 벌린 채 흥흥, 소리만 내자 할멈은 설득의 기술을 발휘했다.

—김홍도 그림도 춘화가 제일 멋지더라. 지나면 다 고전이다. 자극적일수록 더 가치 있는 고전이 되지. 그런 책부터 구해.

그러곤 수미 쌍관으로 마무리했다.

—커피 머신은 얼어 죽을.

엄마는 며칠을 골똘히 고민하더니 할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엄마는 인터넷을 뒤져 철 지난 잡지를 팔겠다는 사람들을 수소문했고, 용산역에서 처음으로 한 남자와 직거래를 했다. 양이 많아서 나와 할멈도 따라갔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여자 둘에 청소년 하나인 우리의 조합에 놀라는 듯하더니 엄마에게 돈을 건네받고 쌩하니 사라졌다. 잡지는 노끈으로 묶여 있어 표지가 그대로 보였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우리 셋과 우리 앞에 놓인 잡지 뭉치에 자주 눈길을 줬다.

—그럴 만도 하지. 다 벗은 여자가 노끈에 묶여 있으니.

할멈이 혀를 차다 엄마의 원성을 들었다.

—엄마가 시켜서 하는 거니까 공범 아닌 척하지 마!

그 뒤로도 몇 차례 직거래가 성사됐고, 그러다 보면 곤이에게 보여 준 것 같은 희귀 자료도 건지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발품을 판 끝에 할멈의 ‘고전 컬렉션’이 완성되었다.

불행히 이 경우엔 할멈의 혜안이 빗나갔다. 가끔씩 성인 잡지 코너에서 아저씨들이 책을 뒤적이는 모습을 본 적은 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엄마의 20대 시절처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에로 비디오를 직접 구입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은밀한 짓은 온갖 경로로 집에서 아무도 모르게 해결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2010년대 후반에 헌책방에서까지 야한 책을, 그것도 여자 주인 앞에 내놓는 게 예사로운 일은 아닌 거다. 어느 중고 레코드 가게 사장이 인테리어를 한다며 몇 권을 사 간 걸 제외하곤, 그쪽 세계의 고전들은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았고 곧 구석에 처박혔다. 낱권으로 당당하게 산 사람은 곤이가 처음이었다.





42.

그날 곤이는 ‘고전’이라는 걸 핑계 삼아 몇 권의 책을 더 사 갔다. 대여는 안 되느냐고 묻길래 나는 여기는 책을 파는 곳이지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알았다, 꼴통아. 어차피 보고 다시 돌려줄 거야. 집에 보관하긴 뭐하잖냐.

욕은 여전했지만 확실히 전보다 부드러운 어조였다. 며칠 뒤 곤이는 또다시 책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곤이는 받아 새끼야, 하며 고집을 부렸다.

—옛날 거라 심히 보수적이더라. 내 취향이랑은 너무 거리가 멀어.

더 이상 실랑이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책들을 받았다. 그런데 중간에 몇 페이지가 떨어지고 없었다. 가운데가 오려진 페이지도 있었다. 미처 찢지 않은 표제가 눈에 띄었다. 브룩 실즈. 곤이가 제발이 저린지 나를 쏘아보았다.

—이거 되게 구하기 힘든 거였는데. 리즈 시절 브룩 실즈가 실린 잡지 중에 책장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게 얼마 없거든.

—그 여자 사진 더 없냐.

—보여 줄까.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브룩 실즈 리즈 시절’이라고 치고 이미지 검색을 클릭했다. 브룩 실즈가 쏟아져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젊음의 정점에 이를 때까지의 모습들이. 곤이가 연신 감탄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가 있냐.

입을 헤벌리고 사진을 한 장씩 넘기던 곤이가 갑자기 엑, 소리를 냈다.

—뭐야, 이 사진은.

‘브룩 실즈 최근’이라는 제목이 달린 사진이었다. 오십이 넘어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 모니터를 채웠다. 젊음은 사그라들었지만 젊었을 때의 미모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곤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 지금 진심 충격받은 거 아냐? 환상이 완전히 깨졌어. 차라리 보지 말걸…….

—원해서 변한 건 아니니 그러지 마라. 세월은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고 살다 보면 별 희한한 일들을 다 겪게 돼.

—누군 몰라? 넌 무슨,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노인네 같냐.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 거니.

—아, 진짜, 왜 이렇게…… 왜 이런 식으로 변한 거야……. 왜 보여 줬어, 새끼야.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그날 곤이는 브룩 실즈와 나에게 번갈아 화만 잔뜩 내다가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냥 갔다.



그러더니 이틀 만에 다시 나타났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뭐.

—나 요 며칠 동안 브룩 실즈 사진 계속 봤다. 옛날 사진 말고, 요새 얼굴들.

—그 얘기 하려고 온 거?

—요새 너 좀 까분다.

—의도는 아닌데, 그렇게 생각됐다면 유감이고.

—어쨌든 브룩 실즈 사진을 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거야.

—어떤?

—운명과 시간.

—네 입에서 나온 말치곤 새롭다.

—넌 새끼야, 단순한 말도 존나 재수 없게 하는 거 아냐?

—모른다.

—잘났다.

—고맙다.

갑자기 곤이가 웃었다. 하하하하하. 숨 한 번에 다섯 개의 하가 분절되어 들어 있었다. 여기서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가 대체 뭐지. 화제를 돌렸다.

—침팬지나 고릴라도 웃는 거 알아?

—뭐, 그렇다 치고.

—그럼 인간의 웃음과 다른 점은?

—알 게 뭐야. 어차피 잘난 척하려는 거면 그냥 말해라.

—사람은 숨 안에 웃음이 실려 있는데 유인원은 내쉬는 숨에 한 번씩밖에 못 웃어. 복식 호흡하듯이 하, 하, 하, 하, 하고 말이야.

—복근 생기겠네.

곤이가 그렇게 말하고 또 웃었다. 이번엔 키드드득, 하고. 그러고선 웃음을 진정시키듯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길게 내뱉었다. 휴우.

뭔가가 달라진 것 같았다, 조금 전과는. 무언가가.

—근데 운명과 시간이라니, 무슨 얘긴데?

내가 물었다. 곤이랑은 이런 식의 대화가 처음이라 좀 낯설었지만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로 하긴 힘든데…… 그러니까, 브룩 실즈는 젊었을 때 알고 있었을까? 늙을 거라고.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거. 늙는단 거, 변한다는 거,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진 못하잖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지금 길 가다 보는 이상한 사람들, 그러니까 뭐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얼대는 노숙자 아줌마라든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다리가 양쪽 다 없어서 배로 땅을 밀면서 구걸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젊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

—싯다르타도 너랑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왕궁을 나왔대.

—싯…… 누구지? 많이 들어봤는데.

이 대목에서 말문이 막혔다. 간신히 곤이의 신경을 돋우지 않을만한 답을 생각해 냈다.

—있어, 좀 유명해.

—어쨌든.

성공했는지 별 반응이 없다. 곤이가 먼 곳을 봤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니까 너랑 나도 언젠가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럴 거야. 어떤 방향이든. 그게 인생이니까.

—잘 나가다가 또 재수 없네. 그래 봐야 너나 나나 살아온 횟수도 같거든.

—햇수야. 횟수 아니고.

곤이가 손바닥을 올렸다가 내렸다. 확 그냥,이라고 말하면서.

—이상하게 이제 더 이상 그런 옛날 잡지 보기 싫다. 즐겁지 않아. 아름다운 것들이 시들어 가는 상상이 돼서. 너 같은 새낀 영영 이해 못 하겠지만.

—브룩 실즈한테 흥미가 떨어졌다니, 너한테 도움이 될 다른 책을 추천해 줄 수는 있다.

—줘 봐.

곤이가 싱겁게 대꾸했다. 나는 외국 작가가 쓴 『사랑의 기술』을 추천해 줬다. 제목을 본 곤이는 묘한 미소를 짓고는 돌아갔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와서 이딴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역정을 내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의미 없는 추천은 아니었다.





43.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5월 정도면 많은 게 익숙해진다. 신학기의 낯섦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 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방과 후에만 문을 열었으므로 당연히 책방의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모름지기 장사란 되지 않으면 접어야 한다던 할멈의 말도 떠올랐다. 매일 먼지를 쓸고 닦았지만 두 사람이 사라진 공간은 점점 낡아 가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 이 공간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서가 사이를 걷다가 들고 있던 책들을 우르르 떨어뜨렸다. 그 바람에 책장에 손끝이 베였다. 습기를 잔뜩 먹은 헌책방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빳빳하고 두꺼운 종이로 만든 백과사전이라 운이 없었을 뿐이다. 낙하하는 핏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닥에 붉은 핏방울이 도장처럼 톡톡 찍힌다.

—뭐 해, 병신아. 피 나잖아.

곤이다. 들어온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다가와선 말한다.

—안 아프냐?

곤이의 눈이 동그랗다. 얼른 휴지를 뜯어 손에 쥐여 준다.

—이 정도는 괜찮은데.

—지랄 마. 피 나면 아픈 거야. 진짜 바보냐?

곤이가 화를 냈다. 생각보다 많이 베였는지 휴지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곤이는 새로 휴지를 말아 내 손을 쥐었다. 꽉 잡은 손가락에서 맥이 고동쳤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자 피가 멎었다.

곤이가 언성을 높였다.

—네 몸 건사할 줄도 모르냐?

—아프긴 한데 참을 만해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 참을 만해? 너 진짜 로봇이냐.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 그렇게 대충대충 얼버무리니까 네 할머니, 엄마가 눈앞에서 그 꼴을 당하는데 멍청히 서 있었지. 아프겠단 생각, 막아야겠단 생각도 못 했지. 화도 안 내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래. 의사들이 그렇대. 타고났대.

사이코패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나를 놀릴 때 쓰던 대표적인 단어다. 엄마와 할멈은 길길이 뛰었지만 사실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나는 진짜 그런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여도 죄책감이든 혼돈이든 아무것도 못 느낄 테니까. 그렇게 타고났으니까.

—타고나?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말이야.

곤이가 말했다.





44.

얼마 후 곤이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가지고 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그 안에는 나비가 한 마리 들어 있었다. 날갯짓을 하기엔 통 안이 너무 좁은지 나비가 여기저기에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공감 교육.

곤이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장난은 아닌 거다. 그 애는 조심스레 손을 넣어 나비를 손으로 잡았다. 꽃잎처럼 얇은 날개를 잡힌 나비가 힘없이 버둥댔다.

—어떨 것 같아?

곤이가 물었다.

—움직이고 싶을 것 같다.

나비를 꺼낸 곤이는 한 손에 날개를 한쪽씩 잡더니 조금씩 옆으로 늘이기 시작했다. 나비의 더듬이가 여기저기로 휘었고 몸통은 심하게 버둥거렸다.

—나한테 뭔갈 느끼게 하려고 이런 짓 하는 거라면 그만둬.

—왜.

—나비도 아플 테니까.

—네가 아픈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지?

—팔을 잡아당기면 아프니까. 그런 건 경험이다.

곤이는 그만두지 않았다. 나비의 몸부림도 극심해졌다. 곤이는 날개를 잡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딴 데로 돌렸다.

—아플 것 같다? 그게 전부면 안 되지.

—그럼?

—예를 들면, 네가 아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야지.

—내가 왜 아파? 난 나비가 아닌데.

—좋아. 계속 가 보자. 네가 뭔가를 느낄 때까지.

곤이가 날개를 더 잡아당긴다. 여전히 딴 데를 보면서.

—그만하라고 말했을 텐데. 생명을 갖고 장난치는 건 나쁜 거다.

—교과서처럼 나불대지 마. 말했잖아. 네가 정말 뭘 느끼면 그때 놓아주겠다고.

그 순간 나비의 날개 한쪽이 찢어졌다. 곤이의 입에서 짧고 급한 숨이 튀어나왔다. 한쪽 날개를 잃은 나비는 남은 날개를 헛되이 놀리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불쌍하단 생각 안 드냐?

곤이가 씩씩대며 물었다.

—불편해 보여.

—불편해 보이는 게 아니라 불.쌍.해. 보이지는 않냐고, 망할.

—그만두자.

—아니.

곤이는 허둥거리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바늘이었다. 그 애는 바닥을 돌고 있는 나비에게 바늘을 가져다 댔다.

—뭐 하는 거야.

—똑똑히 봐.

—그만둬라.

—똑똑히 봐. 안 그럼 다 박살 날 줄 알아. 알았어?

나는 책방이 난장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곤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아이라는 걸 알았다. 곤이는 의식을 치르는 제사장이라도 된 양 나비를 노려봤다. 순식간에 나비의 몸통에 바늘이 꽂혔다. 나비는 소리 없이 발버둥 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파닥거리며, 필사적으로.

곤이는 나를 매섭게 쏘아봤다. 그러곤 이를 악물더니 남아 있던 나비의 한쪽 날개마저 떼어 냈다. 표정이 변하는 건 내가 아니라 곤이 쪽이었다. 눈썹이 눈에 띄게 움찔거리기 시작했고 비웃듯 올라갔던 입술은 이빨에 꽉 물려 있었다.

—어때. 이제 좀 맘이 움직이냐? 이래도 불편해 보이기만 하냐고. 그게 네가 느끼는 전부냐고.

곤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이제는 아플 거라고 생각해, 몹시. 근데 불편해 보이는 건 너다.

—그래, 난 이런 거 좋아하지 않거든. 화끈하게 패든가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이런 식으로 미적거리면서 고문하는 거 아주 질색이야.

—그럼 왜 하는데. 난 어차피 네가 원하는 걸 보여 줄 수가 없어.

—닥쳐, 병신아.

어느새 곤이의 얼굴이 뒤틀려 있었다. 소각장에서 내게 발길질하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곤이는 나비에게 뭔가를 더 해 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날개도 없이 몸에 바늘이 꽂힌 채 빙빙 도는 나비는, 더 이상 나비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벌레는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하고 있었다. 앞, 뒤, 옆으로 빙빙 돌며 초라해진 모습으로 사력을 다했다. 그만두라고 외치는 걸까, 끝까지 살고 싶어서 그런 걸까. 그저 본능일 거다. 감정이 아닌, 감각이 주는 본능.

—젠장할, 못 해 먹겠네!

쿵. 쿵. 쿵. 곤이는 나비를 땅에 던지더니 몇 차례 밟고 짓이기듯 힘을 다해 발을 비볐다.





45.

나비가 있던 자리엔 작은 점 같은 흔적이 남았다. 나는 나비가 편안한 곳으로 갔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비가 불편에 처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이 눈싸움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게임이다. 먼저 눈을 감는 쪽이 지는 것뿐이다. 그런 종류의 싸움에서 나는 언제나 승자다. 사람들은 눈을 감지 않으려고 기를 쓰지만, 나는 애초에 눈을 감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곤이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 애는 나비에게 그런 짓을 하고 나서 왜 화를 냈을까. 내가 반응하지 않아서? 자신을 막지 않아서? 결국 그런 짓을 하고 만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이런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심 박사는 내가 던지는 질문에 늘 최선을 다해서 답하려고 애썼다. 곤이와 나의 특별한 관계를 편견 없이 들어 주는 사람도 그가 유일했다.

—전 평생 지금처럼 살게 될까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말이에요.

우동 면발을 삼키며 물었다. 심 박사는 가끔 내게 밥을 사 줬는데 면 종류를 좋아했다. 취향이 빵 아니면 면인 모양이었다. 그는 단무지를 끝까지 씹어 삼키곤 입을 닦았다.

—어려운 질문이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한테서 그런 질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굉장한 변화라고. 그러니까 노력을 해 보자고 말이야.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데요? 타고난 머리의 문제라면요. 엄마가 시켜서 매일 아몬드도 먹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어요.

—음, 글쎄. 아몬드를 먹는 대신 자극을 주는 건 조금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뇌라는 놈은 생각보다 멍청하거든.

편도체가 작게 태어났지만 노력을 통해 가짜 감정이라도 자꾸자꾸 만들다 보면 뇌가 그걸 진짜 감정으로 인식할지도 모른다는 게 심 박사의 말이었다. 그러면 편도체의 크기나 활성화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게 조금은 쉬워질지도 모른다고.

—지난 십육 년간 꿈쩍 않던 머리가 이제 와서 변할까요?

—예를 들어 주마. 스케이트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백날 연습을 한다고 해서 최고의 스케이터가 되지는 못할 거다. 타고난 음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 적어도 비틀거리며 얼음 위로 조금 나아가는 것 정도는, 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 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란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은 됐으나 설득되진 않았다. 과연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일까.

—이런 고민을 언제부터 했었니?

—얼마 전부터요.

—계기나 이유가 있니?

—글쎄요. 남들은 다 본 영화를 나만 못 보고 있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못 보고 살아도 상관없지만 본다면 다른 사람들과 얘기 나눌 거리가 조금쯤은 많아지겠죠.

—놀라운 발전인걸. 방금 네 말 속에는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단다.

—사춘기인가 보죠.

심 박사가 웃었다.

—이왕이면 즐겁고 예쁜 걸로 연습하려무나. 넌 백지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나쁜 것 말고 좋은 걸 많이 채워 넣는 편이 좋아.

—해 볼게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만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몰랐던 감정들을 이해하게 되는 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란다. 감정이란 참 얄궂은 거거든. 세상이 네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 보일 거다. 너를 둘러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표정이나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지. 길가의 돌멩이를 보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대신 상처받을 일도 없잖니. 사람들이 자신을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자신이 하루에도 수십 번 차이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깨진다는 걸 ‘알게 되면’, 돌멩이의 ‘기분’은 어떨까. 이 예조차 아직은 네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말하려는 건…….

—알아요, 엄마가 비슷한 얘길 자주 해 주셨어요. 절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엄마는 아주 똑똑한 여자였거든요.

—엄마들은 대부분 똑똑하지.

심 박사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다. 어떤 질문이지?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이랄까요?

심 박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두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나비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심 박사는 두 손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얘기가 다 끝나자 표정을 풀고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알고 싶은 게 정확히 뭐지? 곤이가 네 앞에서 그런 짓을 한 이유? 아니면 그때 곤이가 느꼈을 감정?

—글쎄요. 둘 다라고 해 두죠.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곤이는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친구.

내가 의미 없이 되뇌었다.

—친구가 되고 싶을 때 눈앞에서 나비를 찢어 죽이기도 하나요?

심 박사는 두 손을 깍지 꼈다.

—그건 아니지. 아무튼 네 앞에서 나비를 죽이고 나서 그 애는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다.

—나비를 죽여 놓고 자존심은 왜 상했을까요.

박사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재빨리 덧붙였다.

—저를 이해시키는 게 쉽진 않으실 거예요.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단순하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자, 핵심만 말하마. 그 앤 너한테 관심이 많다. 널 알고 싶어 하고, 또 너와 같은 느낌을 느끼고 싶어 해. 그런데 얘기를 들어 보니 늘 그 애 쪽에서 네게 다가간 것 같다. 한 번쯤 네가 먼저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어떻게요?

—한 가지 질문에도 백 가지 다른 답이 있는 게 이 세상이란다. 그러니 내가 정확한 답을 주기는 어렵지. 특히 네 나이 땐 세상이 더 수수께끼 같을 거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되는 때거든. 그래도 굳이 조언을 원한다면, 질문으로 대신하마. 그 애가 너한테 제일 많이 한 행동이 뭐지?

—때린 거요.

심 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깜박했구나. 그건 패스하자. 그다음으론?

—음.

잠깐 생각했다.

—찾아온 거요.

박사가 테이블을 가볍게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할 수 있는 방법 하나는 찾은 것 같구나.





46.

아주머니가 나를 위해 사과를 깎았다. 퉁퉁한 몸을 지닌 아주머니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입 주변과 눈매가 부드러워서 가만있어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과 껍질은 끝까지 끊어지지 않고 나선형으로 깎여 나갔다. 나는 낯선 집의 부엌 테이블에 앉아 사과를 앞에 두고 기다렸다. 사과가 누렇게 변하다 못해 갈색이 되어 갈 때쯤 곤이가 나타났다. 나를 보자 놀란 듯 주춤했지만 아주머니가 중간에서 어색하지 않게 말을 꺼냈다.

—곤이 학생 왔네. 친구가 삼십 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아버지는 오늘 늦으신대. 밥은?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곤이의 표정은 내가 곤이에게서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고 예의 발랐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곤이는 제 세계에 돌아온 아이처럼 다시 원래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얘기했다.

—어쩐 일이냐.

—그냥. 얼굴 보러 왔다.

곤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곧 아주머니가 따끈하게 만 국수 두 그릇을 내왔다. 실은 배가 몹시 고팠는지 곤이는 국수를 받자마자 요란하게 후루룩거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일하러 오시는데 되게 좋아. 적어도 아빠라는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것보단 편하니까.

곤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아빠와는 친해지지 못한 것 같았다. 곤이가 살고 있는 곳은 학교와 무척 멀었다. 윤 교수의 집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깨끗하고 화려한 아파트의 꼭대기 층이었고 거기에선 서울을 상징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곤이는 자신이 그렇게 높이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말을 섞지 않은 지 오래였다. 초반에 너무 힘을 쓴 윤 교수는 아들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수업이나 학회를 핑계로 자주 집을 비웠고 둘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 남자는 말이야…….

곤이가 말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 그 사람이 날 만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게 뭔 줄 알아? 강남에 있는 학교에 날 처넣은 거야. 거기 가면 내가 모범적으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라도 갈 줄 알았나 봐. 근데 첫날 가 보니까 나 같은 놈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물인 거야. 날 보는 눈빛 하나하나에 그렇게 쓰여 있더라고. 그래서 깽판을 좀 쳐 줬지. 거긴 얄짤 없더라. 며칠 만에 쫓겨났어.

곤이가 콧바람을 뿜었다.

—간신히 전학시킨 게 여기야. 그나마 인문계라 체면은 섰겠지.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

곤이가 바닥을 노려봤다.

—난 아들이 아냐. 잘못 찾아온 잡동사니지. 그래서 그 여자 죽기 전에 얼굴도 못 본 거고…….



엄마. 어쩌다가 그 단어가 나올 때면 곤이는 갑작스러운 침묵에 빠졌다. 어디서건, 그러니까 책에서건 영화에서건 지나가던 사람들의 입에서건,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면 곤이는 음 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하던 말을 멈췄다.

그 애가 엄마에 대해 기억하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따뜻하고 보드라웠던 엄마의 손. 엄마의 얼굴은 그려지지 않아도 적당히 땀이 밴 촉촉하고 보드라운 손의 촉감은 잊을 수 없었다. 그 손을 잡고 햇볕 아래에서 그림자놀이를 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삶이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곤이는 자주 생각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손을 잡아 주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잡으려 해도 결국 자기는 버림받을 거라고.

—너랑 나, 누가 더 불행한 걸까. 엄마가 있다가 없어지는 거랑, 애초에 기억에도 없던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서 죽어 버리는 것 중에서.

나도 답을 몰랐다. 곤이는 한동안 고갤 숙이고 있더니 입을 뗐다.

—내가 그동안 널 왜 찾아간 줄 알아?

—아니.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 하나는, 적어도 너는 다른 사람들처럼 날 쉽게 판단하지 않더라고. 네 별난 머리 덕에. 그 별난 머리 때문에 나비니 뭐니 뻘짓만 했지만……. 그리고 두 번째는.

곤이가 잠깐 히죽였다.

—사실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근데 씨발, 입이 잘 안 떨어지더라…….

우리 사이는 조용해졌다. 나는 초침이 탁탁거리는 동안 곤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천천히 곤이가 속삭였다.

—어땠어? 그 여자.

질문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넌 만나 봤잖아. 한 번뿐이지만.

기억을 되짚었다. 꽃으로 가득한 방과 회색빛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얼굴 안에 담겨 있던 곤이의 모습도.

—너랑 닮았어.

—사진 봐도 난 모르겠던데.

곤이가 쳇,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또 묻는다.

—어디가 닮았는데?

이번엔 나를 정면으로 쏘아본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아줌마의 얼굴을 곤이의 얼굴 위에 겹쳤다.

—눈. 얼굴 윤곽. 웃을 때 표정. 눈꼬리가 길어지면서 입가에 작은 보조개가 파이는 거.

—씨발…….

곤이가 고갤 돌렸다.

—근데 널 보고 나라고 생각한 거잖아.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네 얼굴에서 자기랑 닮은 곳을 찾으려고 했을 거 아냐.

—나한테 했던 말은 너한테 하는 말이었어.

—마지막엔, 마지막에는 뭐라고 했냐.

—마지막엔 날 안아 주셨어. 꽉.

곤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간신히 속삭이듯 내뱉었다.

—따뜻했냐, 그 품이.

—응. 많이.

솟아올라 굳어 있던 곤이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그 애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다. 그 얼굴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고 이어서 무릎이 툭 꺾였다. 고개를 푹 숙인 몸이 들썩였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곤이를 내려다보았다. 쓸데없이 키가 커진 느낌이었다.





47.

여름 방학 내내 우리는 만났다. 피부가 끈적할 만큼 습했던 그 여름밤에 곤이는 가게 앞 평상에 드러누워 내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여기에 곤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곤이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버려지고 헤집어지고 때로는 지저분하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인생을, 십육 년의 삶을 말이다. 나는 운명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 거라고 말해 주려다가 그만뒀다. 그거야말로 책에서 읽은 구절에 지나지 않았다.

곤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단순하고 투명했다. 나 같은 바보조차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세상이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 애는 자주 말했다. 그게 곤이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우린 서로를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48.

이따금씩 엄마가 내게 불러 준 노래들을 떠올렸다. 엄마는 낭랑한 목소리를 갖고 있었지만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음색이 낮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고래의 노랫소리 같기도 했고 그저 바람 소리나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같기도 했다. 귓가를 떠돌던 엄마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곧 엄마의 목소리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알던 모든 게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49.

도라는 곤이의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아이였다. 곤이가 고통, 죄책감, 아픔이 뭔지 알려 주려 했다면 도라는 내게 꽃과 향기, 바람과 꿈을 가르쳐 주었다. 그건 처음 듣는 노래 같았다. 도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노래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꿔 부를 줄 아는 아이였다.





50.

개학이었다. 교정의 풍경은 비슷한 듯 달라져 있었다. 짙은 나뭇잎들이 더더욱 짙어져 있는 정도의 변화. 그런데 냄새가 달랐다. 아이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계절이 무르익은 만큼 진해져 있었다. 여름은 힘을 다해 가고 있었다. 나비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고 죽은 매미들이 길 위를 뒹굴었다.

이른 가을이 오면서 내게도 묘한 변화가 생겼다. 설명하기 힘든, 변화라고 하기도 힘든 변화들. 알고 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쉽게 쓰이던 단어들이 혀끝에서 꺼끌꺼끌하게 맴돌았다.

텔레비전에서 데뷔 삼 년 만에 처음으로 1위를 한 5인조 걸그룹의 수상 소감을 보고 있던 그 일요일 오후도 그랬다. 짧은 치마에 가슴을 겨우 가린 탑을 입은 내 또래의 여자애들이 부둥켜안고 방방 뛰었다. 리더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의 매니저와 사장, 기획사 직원들과 스타일리스트, 팬클럽의 이름을 달달 외운 듯 속사포로 뱉어 내더니 울먹이며 익숙한 대사를 읊었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해요. 아름다운 밤입니다!

가요 프로를 즐겨 보던 엄마 덕에 수없이 봐 온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의문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저렇게 흔하게 쓰여도 되는 걸까.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다 결국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괴테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떠올려 봤다. 사랑이 변했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학대를 가한다는 뉴스도.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용서한 이들의 이야기도.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 밖에 냈다.

이런 얘길 곤이에게 털어놓자 곤이는 대수롭잖다는 듯 흥, 소리를 냈다.

—너 지금 나한테 사랑이 뭐냐고 묻는 거냐?

—개념을 정의 내려 달라는 게 아니고, 그냥 네 생각을 묻는 거야.

—내가 알 거 같냐. 나도 몰라. 그 점에선 너랑 나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네.

곤이가 낄낄대더니 눈을 치켜떴다. 표정이 금세 바뀌는 게 곤이의 특징이었다.

—아니다, 넌 할머니랑 엄마가 있었잖아. 그 여자들한테 사랑 많이 받았을 거 아냐. 왜 나한테 묻냐.

말투가 거칠어졌다. 곤이는 제 머리카락을 목 뒤에서부터 머리꼭지까지 몇 번 헝클어뜨렸다.

—사랑 따위 내가 알 게 뭐냐. 해 보고는 싶네. 이왕이면 남녀 간의 사랑.

곤이가 펜을 잡더니 뚜껑을 빠르게 열었다 닫았다 했다. 펜이 뚜껑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길 반복했다.

—그런 건 밤마다 하잖아, 너.

—이 새끼가 농담도 할 줄 아네. 많이 늘었다, 너? 그게 남녀 간의 사랑이냐. 혼자 하는 사랑이지.

곤이가 내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아프지는 않았다. 곤이가 내 얼굴 가까이 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남녀 간의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해?

—그 목적이 뭔지는 알아.

—그래? 뭔데?

곤이의 눈가에 웃음이 어렸다.

—번식을 위한 과정. 이기적인 유전자가 유도하는 본능적인…….

말을 채 맺기도 전에 곤이가 또 뒤통수에 꿀밤을 먹였다. 이번엔 좀 아팠다.

—무식한 새끼. 넌 말이야, 너무 많이 알아서 무식해. 자, 이제부터 형이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생일은 내가 더 빠른데.

—짜식이 실없는 유머만 는다?

—유머 아닌데. 난 단지 사실을 말한 것…….

—닥쳐, 새끼야.

웃으면서 또 꿀밤 한 대. 이번엔 피해서 안 맞았다.

—어쭈? 제법인데?

—말하려던 거나 계속해 줄래.

크험, 곤이가 헛기침을 했다.

—난 사랑이 실없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도 무슨 대단하고 영원한 것처럼 말하는 게 꼴같잖아. 난 그런 물렁한 거 말고 강한 게 좋다.

—강한 거?

—그래. 강한 거. 센 거. 상처받고 아파하는 거 말고 차라리 내가 상처 주는 쪽을 택하는 거. 철사 형처럼.

철사 형. 이미 몇 차례 들은 적이 있지만, 그 이름에 잘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몸이 좀 움츠러들었다. 왠지 더 듣고 싶지 않은 얘기가 펼쳐질 것 같았다.

—그 형은 강해, 정말로. 난 그렇게 되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곤이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빛이 일었다.



어쨌든 곤이에게서 이런 종류의 답을 얻기란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심 박사에게 묻자니 어쩐지 밑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언젠가 공을 들여 ‘愛’를 쓰고 있는 할멈에게 엄마가 물은 적이 있다.

—근데 엄마, 그거 무슨 뜻인지 알고나 쓰는 거야?

할멈이 도끼눈을 떴다.

—그럼!

그러더니 낮게 읊조렸다.

—사랑.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예쁨의 발견.

愛의 윗부분을 쓴 할멈이 가운데 마음 심(心) 자를 써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이 점들이 우리 셋이다. 이 점은 내 거, 요건 너, 이건 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을 나타내는 점이 세 개 박힌 愛가 완성됐다. 그때까진 예쁨을 발견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떠오르는 얼굴이 있기는 했다.





51.

이도라. 내가 아는 이도라를 머릿속으로 그려 봤다. 달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한 마리의 가젤 내지는 얼룩말. 아니, 그것도 적합한 비유가 아니다. 걘 그냥 이도라였다. 달리는 이도라. 바닥에 놓이는 은테 안경. 공기를 휘저으며 단번에 쭉 나아가는 마른 팔과 다리. 안경알이 반사해 내는 빛. 궤적을 남기며 날리는 흙먼지. 질주가 끝나자마자 안경을 잡아 단숨에 코 위에 얹는 흰 손가락. 그게 내가 이도라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52.

입학식 날, 강당에서 지루하게 식이 진행되는 동안 멀찍이 서 있던 나는 슬쩍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복도 끝에 여자아이가 하나 서 있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발끝으로 바닥을 탁탁 찧는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팔과 다리를 쭉 뻗어 몸을 푼다. 그러곤 제자리에서 콩콩콩 뛰더니, 복도를 맹렬하게 가로질러 달린다. 숨을 할딱거리며 달리던 그 애가 내 앞에 우뚝 멈춰 섰고,